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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개인정보 ‘지옥문’이 기다린다
2020-01-22 06:00:00 2020-01-22 06:00:00
요즘 필자는 들어보지도 못한 곳에서 날아오는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흔히 받는다. 휴대전화 단말기나 부동산, 주식 등을 거래하는 사업자들이 보내는 것이다.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내 이름까지 넣어서 보내는 사업자도 있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나 이름을 알았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내 개인정보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스스로 유출하지 않았는데 잘도 알아냈다. 한동안 이런 메시지가 드물었는데, 지난해부터 기승을 부린다. 아마도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단속이 느슨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개인정보가 우주의 먼지처럼 떠돌아다니는 가운데 말많던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와 업계에서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간절히 염원하면 이뤄진다고 했던가?
 
개정된 신용정보법의 골자는 한마디로 개인신용정보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물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도록 소위 '가명조치'를 거친다. 시장조사와 통계작성이나 연구, 기록보존 등을 위해 이용된다고 한다. 그러면 금융사를 비롯한 기업들이 ‘가명처리’된 빅데이터를 필요에 맞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간주돼 왔다. 그런 까닭에 여러 가지 위험성과 우려가 제기돼 왔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국회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개정 신용정보법이 시행되면 신용정보산업의 지형이 바뀐다고 한다. 통신요금·전기·가스·수도 요금 등 비금융정보를 활용해 신용을 평가하는 비금융정보 전문 신용조회업(CB)이 출현하는가 하면, 개인사업자의 신용평가를 전담하는 사업도 생긴다. 결국 한국의 대부분 국민과 사업자는 신용조회의 그물 속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어가는 셈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요즘 막대한 데이터가 생산되니, 이를 산업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 데이터를 썩히지 않고 산업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해 보자는 의욕이야 탓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되면서 벌어질 부작용도 벌써 눈에 선하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지적했듯이, 개인정보가 재식별되고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유통될 가능성이 결코 작지 않다. 이 업자 저 업자가 빼가서 ‘알뜰하게’ 써먹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개인정보의 ‘지옥문’이 열린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 지옥문을 통과하면 어떤 괴물과 괴조가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다. 게다가 단테의 표현대로 그 다음에 거기서 빠져나올 희망도 없다.
 
이를 막기 위해 새로운 신용정보법은 개인정보를 재식별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금지해 놓았다고 정부는 강변한다. 개인정보를 고의로 재식별하고 유통시킨 사업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법규가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우선 법원 판결을 거쳐야 하니 길고 복잡한 과정이다. 설령 그렇게 처벌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유출되고 떠도는 정보를 회수할 방법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개인CB와 개인사업자CB에는 최대주주 적격성 심사제도가 도입된다고 한다. 이 역시 공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국에는 금융사의 경우에도 이미 대주주 적격성 심사제도가 있다. 그렇지만 과연 그 어느 금융사 대주주가 이 제도를 통해 퇴출된 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대주주들은 요리조리 피해왔다. 법을 집행하는 당국도 마찬가지로 이 논리 저 논리를 대면서 책임을 회피해 왔다. 그러므로 이번에 들어간 대주주 적격심사제도 역시 ‘포수 없는 대포’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이 법을 시행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꼭 필요하다고 하니 막을 수도 없다. 그렇지만 개인정보가 제대로 보호된다고 하는 확신이 없으며 뜻대로 되기 어렵다. 개인정보를 악용하는 업자가 창궐한다면 신뢰가 무너진다. 신뢰가 무너지면 최악의 경우 정보 자체를 믿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정보든 데이터든 신뢰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하고 악용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처럼 마련된 법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새로운 법은 오는 7월쯤이 돼야 시행된다고 하니 아직 시간은 있다. 선량한 시민들을 지옥문으로 몰아넣지 말아야 한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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