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은행권 위기의식 속, 다시금 '사람'을 본다
입력 : 2020-01-12 20:00:00 수정 : 2020-01-12 20:00:00
최한영 금융부 기자
지난 2004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박병원 차관보(이후 우리금융지주·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역임)를 중심으로 조기경보시스템(Early Warning System·EWS)을 구축했다. 경제동향과 자료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분석해 6개월 후 경제위험 수준을 미리 알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2008년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사람이 수시로 체크하지 않으면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운, 컴퓨터 프로그램의 한계라는 말이 나왔다.
 
올해 주요 금융그룹·은행장들의 신년사를 보면 공통적으로 위기의식이 발견된다. 저금리와 저성장, 저물가 등 이른바 ‘3저(低)’ 고착화로 요약되는 내부요인에 글로벌 경기침체, 미중 무역분쟁 등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불안요소까지 겹치며 올해 작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게 주된 내용이다. 각 사는 심기일전하며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사실 금융사를 위협하는 요소는 업황부진 뿐만 아니라 전산오류·해킹, 직원 파업 등으로 다양하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대응 매뉴얼 수립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완벽한 매뉴얼’을 만드는게 과연 정답일까.
 
한 전직 공무원은 “매뉴얼 만능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그 분량이 방대할수록 매뉴얼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법전보다 두꺼운 매뉴얼을 만들어놓고 비상사태가 생기면 그대로 하라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공직사회보다 변화속도가 빠른 민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위 전직 공무원은 “직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간결한 원칙을 만들고 현장 실무자에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좋은 위기대응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답은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중요성은 일상 경영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 1999년 10월 고려대 정책대학원 특강에서 “(IMF 위기 당시) 주인이 없는 은행은 경영진의 무책임 때문에 망했고, 주인이 있는 비은행 금융기관은 주인의 과욕으로 망했다”고 지적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 여부가 주인의 유무가 아닌, 경영진·대주주의 자세와 건전한 제도 확립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면서 한 말이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어떤 사람이 운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뜻도 포함한다.
 
20여 년 전 이 전 부총리가 했던 말에 비춰본 현실은 어떤가. 모든 은행들이 인재확보·육성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만 인사철이면 나오는 계파 간 경쟁·낙하산 논란 속 결국 어디에 줄을 대는지가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을 볼 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최한영 금융부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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