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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의 우상에서 도망자까지…김우중 '파란만장' 83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자산 77조원 회사 키운 샐러리맨 신화
IMF 사태로 재계 2위 그룹 해체 후 해외도피 등 불행한 말년
2019-12-10 11:07:56 2019-12-10 11:07:56
[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자본금 500만원으로 30년만에 자산가치 77조원의 회사를 만든 '샐러리맨의 우상'이자 '세계경영 신화'의 주역. 역대 최대의 부도와 몰락, 그리고 해외 도피.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삶은 고속 성장을 거듭하다 'IMF 사태'로 위기를 맞은 우리나라 경제와 그 궤를 같이한다.
 
고인이 된 김 전 회장은 1936년 대구에서 6남매중 4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납북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았고 휴전 후 상경해 당시 명문이었던 경기중·고등학교를 나온 뒤 1960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 근무하던 김 전 회장은 31세 때인 1967년 트리코드 원단생산업체 대도섬유 도재환씨와 손잡고 대우실업을 창업하면서 '신화'의 초석을 놨다. 대우(大宇)란 이름은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009년 3월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그룹 창립 42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모습. 김 전 회장은 그룹 해체 후 10년 동안 창립행사에 불참했다. 사진/뉴시스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한 대우실업은 첫해 싱가포르에 트리코드 원단과 제품을 팔면서 58만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이를 토대로 1968년 대통령 표창을 받으면서 급성장을 거듭했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지사를 설립했고 정부의 수출 확대 정책에 맞춰 싱가포르와 인도네이사, 미국 등으로 의류·원단을 수출하면서 발을 넓혔다.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뒤 1976년 한국기계,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옥포조선소(대우조선해양) 등을 인수하면서 중공업으로 확장했다. 같은 시기 에콰도르와 수단, 리비아 등 아프리카 시장에도 진출했다.
 
김 전 회장의 거침없는 확장으로 대우는 창업 15년 만에 국내 4대 재벌로 성장했다. 특히 해외 영업 분야에서 강점을 보였던 김 전 회장은 '박정희 정권'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기업인으로 주목받았다.
 
1983년에는 국제상업회의소에서 3년마다 수여 하는 국제기업인상을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수상하기도 했다. 국제기업인상은 '기업인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1989년에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란 책을 출간해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면서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1990년대 들어서는 동유럽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에 자동차공장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면서 세계경영에 더욱 매진했고 1998년 대우그룹은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했고 국내 10만명, 해외 25만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자산총액은 76조7000억원, 매출은 91조원에 달했다.
 
김 전 회장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출발한 창업가라는 점에서 삼성을 키운 이병철 전 회장, 현대를 일군 정주영 전 회장과는 다소 결이 다른 재벌 총수로 평가된다.
 
숙환으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사진/뉴시스
 
하지만 1997년 11월 외환위기로 그의 신화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1998년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이 흔들렸고 금융당국이 기업어음 발행 제한에 이어 회사채 발행도 제한하면서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계열사를 10개로 줄이는 등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999년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고 그룹이 해체되면서 김 전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30년의 눈부신 성장이 3년도 안 돼 막을 내렸다. 
 
김 전 회장의 몰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분식 회계 혐의가 있던 김 전 회장은 검찰 수사를 피해 5년 8개월간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하다 2005년 6월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역대 최대 규모인 21조원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아 복역하다 2007년 12월31일 특별사면됐다. 그러나 그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추징금 중 0.5%에 해당하는 800억원 가량만 납부했다.  
 
절치부심하던 김 전 회장은 특별사면 뒤 '제2의 고향'인 베트남에서 인재 양성 사업에 전념하면서 명예회복에 힘썼다. 2009년 결성한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통해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첫 대상지가 베트남이다.
 
1986년 베트남이 시장 경제를 받아들이려 할 때 김 전 회장이 해외 기업 총수 중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고 해외 도피 당시에는 사실상 베트남 정부가 김 전 회장을 보호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김 전 회장과 베트남은 관계가 깊다.
 
김 전 회장이 건강이 악화해 다시 국내로 돌아올 때까지 머문 곳은 베트남 하노이번찌 골프장에 있는 숙소다. 이 골프장은 베트남 정부가 땅을 내놓고 태국 부총리가 돈을 댄 곳으로 김 전 회장의 막내아들이 실소유한 곳으로 알려졌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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