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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승소했으니 더 겸손해져야
2019-11-13 06:00:00 2019-11-13 06:00:00
현대모비스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2월 현대모비스의 밀어내기 판매를 문제삼아 과징금을 부과하고 임원을 검찰에 고발한 사건에서 최종 승소한 것이다.
 
사건 내용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현대모비스가 지난 2010년 1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3년11개월 동안 정비용 자동차부품 사업부문의 매출목표를 과도하게 설정한 후 이를 달성하기 위해 1000여개 대리점들에게 부품구입을 강요했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대리점에 억지로 밀어냈다는 것이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해 왕성한 의욕을 보일 때였다. 사기도 새롭게 충전됐다. 기세가 오른 공정위는 5년을 끌어온 이 사건에 대해 ‘강수’를 뒀다.
 
그러나 임원고발 사건은 지난해 11월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됐다. 현대모비스도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끝에 서울고등법원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최종 승리했다. 대법원에서는 사건에 대한 심리도 벌이지 않고 지난달 기각 판결을 내렸다. 공정위로서는 검찰과 서울고등법원, 대법원에서 연이어 패배했으니 ‘3전3패’로 끝난 셈이다.    
 
사건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 결정적 이유는 ‘증거부족’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검찰과 법원에 대리점 설문조사결과를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설문조사에 대리점의 실명은 빠져 있었다. 더욱이 대리점들은 검찰과 법원에서 ‘침묵’했다. 진실을 말하지 않거나 부인했다. 그러니 검찰과 법원이 보기에 공정위의 고발과 과징금 부과조치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었던 셈이다.
 
대리점들이 검찰과 법원에서 입을 다문 것은 한마디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실대로 진술할 경우 현대모비스의 유죄가 입증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결과 거래가 끊기는 후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법원과 검찰이 요구하는 증거를 자신들의 입으로는 차마 발설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리점들의 이런 곤란한 입장은 상업거래의 실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법원과 검찰이 조금만 더 파고들어갔다면 진실을 충분히 드러낼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법조문의 형식논리에 매달린 나머지 쉽게 결론내린 것 같다. ‘진실 너머의 진실’이 끝내 외면받은 셈이니 아쉽기 그지 없다.
 
공정위 조치에 맞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현대모비스를 탓할 수는 없다. 기업이 사법부의 공정한 판결을 받아보겠다는 것은 민주주의 시대에 누릴 수 있는 권리의 하나다. 따라서 이런 다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검찰과 법원이 공정한 입장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이 과연 진정으로 공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  
 
사실 경제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의 검사와 판사 등 법조인들은 최고의 지식엘리트들이다. 그들은 사법고시 합격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법조문도 숙지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동적이면서도 흙탕물이 넘치는 상업거래의 진실과는 대체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기에 얼른 눈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세계에 대한 공정한 판단과 깊은 이해가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불멸의 명저 <수사학>에서 “공정하다는 것은 성문법을 초월한다”는 말을 남겼다. 법전의 문구가 아니라 법을 만든 사람의 정신을 함께 고려해야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법조인들이 이런 고전적인 가르침이야 굳이 되새길 필요까지야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법을 통해 공정한 거래를 뒷받침하고 촉진해야 할 법원과 검찰의 소임은 여전히 남는다. 
 
재판에서 이긴 현대모비스도 느끼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검찰과 법원에서 승리하기 위해 쏟은 시간과 비용이 무엇보다 아까울 듯하다. 그 과정에서 성찰도 충분히 했을 것이다. 그러한 낭비가 다름 아닌 스스로에 의해 야기된 것임을 분명히 인식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현대모비스도 이번 판결에서 승소했다고 무조건 좋아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보다 겸손해야 한다. 대리점들의 미움을 산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겠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유익한 일 아닌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검찰고발과 과징금 부과조치를 단행할 즈음 현대모비스는 대리점과의 상생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런 결심이 지금도 변함없는지 궁금하다. 재판에서 이겼다고 마음이 돌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고 싶다. 대리점도 결국 한 가족이요 공동운명체로 여기고 함께 번영하는 길을 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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