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82년생 김지영’, 사람에 대한 이해와 출발의 시작
여성의 삶 ‘포기’ vs 남성의 삶 ‘선택’...어떤 삶 ‘희생’이었나 질문
남녀 문제 아닌 ‘사람’과 ‘가족’으로 풀어 낸 시선…‘이해와 공감’
입력 : 2019-10-18 00:00:00 수정 : 2019-10-18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원작은 주인공이 겪은 사건과 경험의 나열이 전부였다. 사건 자체 공감대가 높았다. 누구라도 주인공이 됐다. 주인공이 겪은 사건은 너의 경험이 됐고, 나의 경험이었다. 그래서 공감 지수가 치솟았다. 모두가 끄덕였다. 하지만 남자들은 반발했다. 주인공 상황의 원인이 남자에서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서술됐다. 사실 그럴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유리천장 지수가 등장한다. 우리 사회 여성들이 느끼는 차별과 소외에 대한 얘기를 에두르지만 꽤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사회 전반에 젠더 갈등 촉발에 불을 지피고 기름을 부은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얘기다. 이건 여자의 얘기다. 김지영이란 대표성에 모두의 경험과 모두의 공감이 더해졌다. 그래서 여성들은 우리가 그래서 그런 것이다고 수긍했다. 반대로 많은 남성들은 우리 때문에 그랬다고?’란 감정에 반발했다. 이 원작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단 소식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제작 불가청원이 올라온 것도 이 같은 갈등 이슈와 그런 논제 때문이었다. 물론 이건 시선과 공감 그리고 이해와 오해의 차이 때문일 듯싶다. 원작 역시 단순하게 김지영이란 대표성을 여성으로 국한 시킨다면 오해의 논거와 논제의 불합리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건 여자의 문제가 아니다. 남자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문제다. 그래서 영화의 시선과 이른바 톤 앤 매너가 달라진 것도 긍정적이다. 원작의 오픈 엔딩이 영화에서 클로징으로 변화를 맞은 것도 그런 이유는 아닐까. 원작의 ‘82년생 김지영이 영화란 판타지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자세일 듯싶다.
 
 
 
김지영(정유미)은 우리 모두다. 영화에선 엄마다. 딸이다. 그리고 아내이며 며느리이다. 김지영은 갓난 딸을 돌보며 남편을 챙기고, 시집 모임에 두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다. 지영은 언제부터인가 이름이 아닌 누구 엄마’ ‘누구의 아내로 불렸다. 때로는 맘충이란 단어로 자신의 모든 것을 무시당하게 된다. 자꾸만 숨이 막힌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이 고된 것이 아니다. 그 삶은 숭고하고 고귀하다. 하지만 그 숭고함과 고귀함을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괴롭다. 그 숭고함과 고귀함 속에서 정작 자아는 존재할 자리가 없다. 그렇게 점차 자신을 잃어가는 지영은 돌아가는 세탁기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다. 자신을 잃어가는 지도 모르겠다. 떨어지는 태양과 붉게 물드는 석양에 가슴이 하고 내려 앉는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은 또 하루를 버티기만 했다. 아이는 또 울고 보챈다.
 
남편 대현(공유)은 여느 남편들과 달리 살갑고 가정적이다. 퇴근과 함께 웃옷만 벗어 던지고 딸의 목욕을 돕는다. 아내는 웃는다. 고마워한다. 이들 부부의 일상이다. 하지만 대현은 알고 있다. 아내의 미묘한 변화가 걱정된다. 미묘함은 점차 커지게 된다. 사실 대현은 아내 지영의 변화가 두렵고 무섭다. 그래서 더욱 더 일상에 집착을 했다. 대현의 갑작스런 변화는 아니다. 이들 부부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일상의 연속을 살아 온 삶 그 자체였다. 그 속에서 아내가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대현은 두렵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명절이 다가온다. ‘올해는 시댁 처가 어디에도 가지 말자. 우리끼리 여행이나 가자며 지영을 부추기는 대현이다. ‘진작 그러지 그랬냐며 퉁명스럽지만 살갑게 받아 치는 지영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린 딸을 태우고 부산 시댁으로 향한다.
 
시댁은 언제나 낯선 공간이다. ‘며느리는 딸이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며느리일 뿐이다. 시어머니의 빈정은 여전하다. 지영은 눈치를 본다. 대현은 아내의 눈치를 본다. 시댁에서 대현은 아들이 된다. 지영은 그저 며느리이고 남일 뿐이다. 지영은 겨우겨우 한 숨을 돌리고 친정으로 향할까 했다. 그때 시누이가 들이닥친다. 시누이도 엄마이고 딸이고 며느리이고 그 자신이다. 지영은 결국 하고 싶은 얘기를 쏟아낸다. “사부인, 저도 우리 딸을 보고 싶어요. 그럼 보내주셔야죠.” 지영은 갑자기 지영이 아니게 됐다. 남편 대현은 놀란다. 지영의 시댁 식구들도 놀란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일상이었다. 지영은 뭔가 달라졌다. 일상에서의 변화다. 하지만 지영에겐 그 일상이 일상이 아니었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지워간 시간이었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던 시간이었다. 지워져 가는 지금이 고통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것 같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젠 지영도 대현도 어느 누구도 지금에 대한 정답을 모르겠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82년생 김지영은 우리 시대의 얼굴을 얘기한다. 김지영이란 대표성에서 시작하면 이 얘기는 여성에 대한 얘기다. 원작에서도 등장한 유리천장 지수는 우리 사회 여성의 사회 불평등 지수를 거론할 때 사용되는 대표성이다. 영화에선 이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성의 모습과 삶 속에서 질문을 이어간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여성의 대표성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 대현의 대사에서도 등장한다. “나 때문에 좋아하던 일 그만 두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 하게 만드는 것 보고 싶지 않다란 말은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외면과 등한시를 거론한다.
 
원작에서도 영화에서도 여성은 포기’, 남성은 선택의 삶으로 그려진다. 영화 속 대현도 지영의 아빠도 지영의 남동생도. 모두가 선택을 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반면 여성들은 모두가 포기의 삶이었다. 지영의 엄마 미숙, 미숙의 엄마도 그랬다. 지영의 언니 은영이 선택을 통한 삶을 살고 있는 듯싶지만 그 역시 들여다 보면 포기에 가깝다. 여성은 포기를 통해 삶의 방향성을 찾아 나선다. 남성은 선택을 통해 삶의 시선을 잡아간다. 아마도 우리 사회 젠더 갈등의 시점이 된 이 영화 원작이 전달하는 두 가지 개념 충돌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포기와 선택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희생을 거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하지만 과연 이 문제가 여성과 남성의 젠더 개념으로 풀어내야 할 논제가 될까. 영화는 원작과는 달리 조금 더 순화되고 보편화된 시각을 의미 있게 드러낸다. 김지영을 통해서 여성으로서 포기의 삶이 가져온 자아 상실에 대한 의미를 끌어 올리는 것보단, 남성으로서 선택의 삶을 통하고 여성의 포기에서 얻게 젠더 베네핏에 대한 의미 부여를 부각하지 않는다.
 
조금 더 의미를 확장해 보면 ‘82년생 김지영속 삶의 색깔을 젠더보단 가족과 사람으로 확장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화자의 개념으로 등장시킨 남편 대현의 역할, 김지영이 풀어가는 이 영화 속 삶의 과정 속 문제 의식에 대한 해결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포기와 선택의 논제 충돌을 희생으로 끌어가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82년생 김지영의 영화적 시선의 마무리가 이해와 공감이라고 한다면 젠더 논란을 희석시키는 빛 좋은 개살구로 폄하될까. 최소한 이 영화의 마무리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사람에 대한 이해의 출발을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가르쳐 주는 친절하고 따뜻한 인사다. 개봉은 오는 23.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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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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