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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나랏말싸미’, 한글은 이 얘기에 어떤 감정일까
역사적 사실 아닌 신미스님 조력설 중심…“어떻게 관여했나”
‘해례본’ 언급된 창제 과정 아닌 영화 속 창제 과정...‘갸우뚱’
2019-07-21 00:00:00 2019-07-21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적 의의 그리고 소재의 의미, 여기에 주연 배우였던 한 분의 갑작스런 죽음. 영화 나랏말싸미는 앞선 몇 가지 지점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착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앞선 그 몇 가지 지점이 고려된다고 하면 더 착한 영화이어야만 한다. 상업적 완성도와 역사적 팩트의 경계선을 어디에 두고 고려해야 할지는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그런 지점이라면 나랏말싸미적당히 착한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스토리의 감정 진폭이 크지 않기에 그렇다. 상업적 의미, 즉 재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나랏말싸미가치는 크지 않을 듯싶다. 반대로 세계 최고 소리 문자로서의 가치 의미를 되새길 의미에서라면 나랏말싸미는 던지는 화두가 만만치 않다. 영화가 소비적인 측면으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란 전제라면 훈민정음 창제 과정 속에 숨은 이야기는 분명히 되새겨 봐야 할 가치를 담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나랏말싸미는 시선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먼저 한글 창제 과정에 얽힌 내용을 다루는 방식이다. ‘나랏말싸미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분명히 창작극이다. 사학계 한 가지 주장인 신미스님 조력설이 중심이다. 한글, 즉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주도하에 집현전 소수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나랏말싸미가 담고 있는 것은 야사에 가깝다. 물론 그렇다고 거짓은 아니다. 여러 주장 중 하나다. 한글은 조선 시대 언문이라고 불렸다. 천대 받았다. 당시 일부에선 암글이라고 얕잡아 부르기도 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사회를 지배하던 그 시기에 여성들이나 쓰던 문자라고 천대한 지칭이다. 이미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내용이니 그 내용을 전제로 출발하면 나랏말싸미언문혹은 암글로 불리던 훈민정음이 지금까지 살아 남아 세계 최고의 문자로 존경 받고 있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 출발된 스토리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물론 천대 받던 문자한글이 어떻게 1446년 반포 이후 573년이 지난 현재까지 살아 남아 사용되고 있었을까. 이 의문에서 역으로 출발했기에 나랏말싸미내용은 납득이 된다. 사대주의가 권력 존립 기반이고 그 기반 핵심이 한자에 대한 독점이었다면 한글은 그 기반을 깨트려야 하는 권력 혁파의 시작이었다. 당연히 지배층의 천대와 멸시가 이어졌어야 한다. 그 밑바탕에 숭유억불 정책을 유지한 조선 초기 사회상 속 스님의 아이러니한 창제 과정 개입, 여기에 소헌왕후가 궁녀들을 통해 한글 사용 독려와 여성들을 통해 사용 권장을 유도하는 장면은 꽤 의미심장하다. 결과적으로 나랏말싸미는 가장 엄격한 계급 사회의 조선 시대 속 민본주의의 싹을 틔우려 했던 세종대왕의 고민이자 산물이 한글로 이어졌고, 그 한글의 의미와 가치가 이런 것이란 점을 강조한다. 물론 불편한 점이라면 신미 스님 조력설을 따온 영화는 한글의 가치적 무게를 의외로 훼손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내비쳐 의아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범어와 파스파 문자 등에 통달한 신미 스님이 소리 문자로서의 한글 창제 과정에 이들 문자의 도움을 받았단 점을 은연 중에 내포한다. 물론 영화적 허구와 재미를 위해 더한 장면이라고 하지만 소재의 무게감을 따지자면 훼손의 시선으로 볼 수도 있다. 한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반포일 그리고 글자를 만든 원리가 남아 있는 문자다. 국내에선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을 통해 공개된 내용이다. 자음 17개 모음 11개의 완벽에 가까운 소리 문자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의 시작이란 포스터 속 소개 글은 영화적 완성도와 역사적 팩트 경계선을 혼동케 할 수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한글은 세종 대왕이 만들었다는 우리에겐 상식이고 완벽한 명제다. 하지만 나랏말싸미에선 이 불변의 명제를 비틀어 버렸다. 사실 이건 비틀었다가 아니다. 완벽하게 전복시켜 버렸다. 역사는 사실이다. 물론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럴 것이다란 추측과 그 추측을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를 통해 사실이라고 최대한 단정하는 것이 역사다. 하지만 한글은 문자다. 그리고 그 문자가 누구에 의해 어떤 원리로 언제 세상에 태어났는지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이면에 어떤 노력이 있었고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기록에서 배제됐을 수도 있다.
 
나랏말싸미는 그 배제됐을 수도 있을그 지점을 주목하고 그 가치를 어디에 두고 지금의 사회 모습을 투영시킬 방법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우리 민족의 가치 유산 의미 속 뒷얘기에만 집중한 결과를 한글573년 역사이자 존재 가치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건 납득하기 힘들다. 사실 영화는 창제 과정 속 숨은 얘기가 아닌 인물들의 관계와 가치를 두고 벌이는 논쟁에 더 집중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태어난 한글의 깊은 뿌리의 근원이 세종대왕 스스로 언급하는 언문이란 가치라면 세계 최고 문화 유산 중 하나로 칭송 받는 한글에겐 결코 유쾌한 지금은 아닐 듯싶다. 개봉은 오는 24.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P.S ‘한글 1910년대 초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한글학자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이란 크다는 것을 뜻하니, 한글은큰 글을 말한다. 1446 9월 제정 반포됐을 당시의 공식 명칭은 훈민정음이다. 영화 속에서 신미 스님이 오랫동안 살아 남길 바란다면 천한 이름으로 지어야 한다는 조언에 언문이라고 짓겠다고 말한 점은 영화적 상상으로 봐야 할 듯싶다. 실제 역사 기록에는 세종 대왕과 창제 과정에 참여한 학자들은 언문이라고 부르진 않았다고 한다. 언문은 반포 이후 기득권 층이 훈민정음을 천대하며 부른 이름이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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