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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의원들의 막말 경연대회
2019-05-21 06:00:00 2019-05-21 06:00:00
촛불혁명으로 한국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이 피나 싶었지만 ‘일장춘몽’이었다. 의원들은 여전히 무력사용을 주저하지 않고 국회를 파행으로 이끌고 있다. 2012년 만든 국회선진화법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한 자유한국당은 장외로 나가 격렬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차량공유서비스 ‘타다’를 둘러싼 갈등 속 택시기사가 분신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권이 바뀌어도 한국은 여전히 어수선하기만 하다.
 
이러한 혼돈은 우리를 두려움에 빠뜨린다. 지금의 어수선함은 한국이 비민주적이라서가 아니라 ‘과잉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인 듯하다. 요즘 국회의원들의 막말 시리즈를 보면 이를 절감할 수 있다. 혹자는 국회의원들의 막말을 보고 품위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 품위가 없는 정도를 넘어 위험천만한 지경이다. 그들은 막말 경연대회라도 벌이듯 한쪽이 세게 발언하면 다른 한 쪽은 더 세게 발언하고 나선다.
 
7선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한국당을 “도둑놈”이라 표현하고 6선인 한국당 김무성 의원은 “청와대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자”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사이코패스”라고 칭하고 이에 질세라 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국가수반인 문재인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비유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낳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차마 낯 뜨거워 사용할 수 없는 비속어로 여론을 선동하다 구설수에 오르니 “뜻을 모르고 사용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기가 찰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특정 정당도 아니고 모든 정당의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저질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니 무섭고 섬뜩하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민주당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는 취임사에서 “막말 정치를 삼가겠다”고 밝혔지만 과연 이게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정치인들의 막말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정치인들도 점점 저속한 언어들을 사용해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계단이나 휴식 시간에만 은밀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양아치(racaille)” “머저리(cons)” 같은 단어들을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사용한다. 정치계급의 이러한 행동은 안타깝게도 확인된 사실이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90년대까지 정치인들의 그 어떤 언어적 일탈도 용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이 깨지고 있다. 남녀 정치인들은 자제하지 않고 육두문자를 써 가며 정치적 선전구호를 외치고 있다. 왜 이러는 것일까.
 
프랑스에서는 전통적으로 극우당인 FN(국민전선)의 리더 장 마리 르펜(Jean-Marie Le Pen)이 언론에서 소외되자 주목을 끌기 위해 일부러 막말을 시작했다. 르 펜이 막말을 사용하면 몇 일, 혹은 몇 주간 논쟁이 일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막말은 극우들만이 사용하지 않고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창피를 주고 처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무기로 변질되고 있다.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막말은 주목을 받는 대표적인 방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립사범학교에서는 아직도 프랑스어 구사에 신경을 써 연사들이 상스러운 말을 사용하지 않도록 교육시킨다. 이 대학에서 언어학을 가르치는 안 마리 파이에(Anne-Marie Paillet) 교수는 정치인들의 저속한 언행은 무엇보다 나약함의 표시라고 말한다. 파이에 교수는 “실제로 세게 말하기 위해 옛날에는 수사를 동원했지만 오늘날은 저속한 언어들을 동원한다. 옛날에는 거칠거나 격렬한 어조로 호소했지만 지금은 이 정치적 수사가 효과를 잃었다. 따라서 점점 정치인들은 기고만장해서 막말을 미디어와 SNS에 퍼트리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니콜라 조루주(Nicolas Georges) 역시 동의한다.
 
거리의 시정잡배에게 막말은 씩씩한 표현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TV나 국회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막말이 제 아무리 먹힌다 해도 이는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사람들이 실수로 내뱉는 하나의 행동에 불과하다. 그리고 막말은 폭력적일 뿐 내용은 빈약하다. 이는 건설적이기 보다 파괴적인 효과만 동반한다.
 
프랑스 정치인들도 우리 정치인들처럼 막말을 한다지만 수준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이에 교수의 말처럼 나약한 정치인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일까. 한국 언론은 이러한 진단을 내리기보다 ‘정치인들의 육두문자는 지지층 결집 효과를 가져와 정당 지지율이 올랐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그 어떤 과학적 증거도 없는데도 말이다. 언론의 이러한 보도 행태는 정치인들의 저질 행동을 더욱 부추긴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서는 먼저 언론의 보도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아울러 연사들이 대중 앞에서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지 학교에서 교육해야 한다. 한국 정치인들의 막말은 결국 정치인이 문제지만 언론, 교육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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