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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바이스’, 지금의 미국 어디에서 시작됐나
부시 행정부 시절, 권력의 실제 ‘부통령’ 딕 체니 일대기
입법-행정 장악 ‘보이지 않는 권력 유령’의 맹목적 신념
2019-04-16 00:00:00 2019-04-16 12:49:39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영화 바이스를 본 뒤 제어가 불가능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우선 아담 맥케이의 연출력에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권력의 심장부인 백악관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을 일컫는 네오콘의 핵심 인물들이 벌이는 야수성과 지금도 미국 사회를 끈질기게 유지시키는 그들의 힘의 배경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통찰한다. 정치 권력 드라마다. 유려하게 촘촘한 관계의 설정과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세밀한 시선을 예감케 한다. 아담 맥케이는 반대다. 이미 네오콘의 시선은 극단적이다. 그들의 극단성은 현 트럼프 정부의 강경 정책의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돼 왔는지를 조명한다. 부시 행정부 이후 오바마 정부로 권력이 이양되면서 미국 사회는 진보적 색채로 돌아섰다.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의 시작이 전임 정부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건 오바마 정부의 문제였을까. 아담 맥케이는 이 시점에서 네오콘의 핵심 인물이던 악의 부통령딕 체니의 일대기를 그린 바이스로 트럼프 정부의 이런 극단성을 비꼬고 풍자했다. 권력의 문제가 이양이 아닌 시작의 문제였단 사실을 바라보며 신보수주의자들의 구멍 뚫린 통찰력이 어떤 맹목적 신념을 의식적으로 지배하는지를 말한다. 영화 마지막 대사가 아직도 괴악스러울 정도다. 은퇴한 딕 체니는 앵커의 물음에 난 사과하지 않겠다. 난 당신들의 요구대로 행한 것 뿐이다라고 뻔뻔하게 말한다. 이 말이 괴악스럽다면 지금의 우리 정서와 분명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고, 이 대사에 거북함이 없이 동조한다면 우리의 지금이 불편한 현실이라고 느끼는 또 다른 네오콘을 향한 직설일 것이다. 미국 부통령을 일컫는 바이스가 사실은 명시적 의미로 을 뜻하는 것도 이런 직설의 은유가 된다.
 
 
 
영화 바이스는 독특한 구성을 가진다. 즉 플롯 자체가 딕 체니의 명목적 신념의 근원을 쫓는다. 청년 시절의 딕 체니는 별 볼일 없는 인물이다. 고향 와이오밍 주 캐스퍼시 도로 한 복판에서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검거된다. 다니던 예일대에선 쫓겨난다. 고향의 전설 설비공으로 일하며 매일매일 술독에 빠져 산다. 그런 그의 곁에는 총명한 여자친구 린이 있다. 그의 경고와 악다구니는 파괴된 딕 체니의 내면 깊은 곳의 바이스를 자극시킨다. 본능적으로 권력의 속성 DNA를 가진 딕 체니와 린이다. 딕은 의회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자신의 인생을 바꿀 멘토를 만난다. ‘네오콘의 또 다른 상징적 인물 도널드 럼즈펠드다. 권력을 두고 접이식 나이프처럼 휘두르는 인물이다. 자신을 막아서는 그 무엇도 베어버리는 인물이다.
 
럼즈펠드의 눈에 딕은 권력의 인자를 그대로 이식한 특별한 이다. 그를 정치의 시스템 안에 안착시킨다. 딕 역시 럼즈펠드의 우산 아래에서 자신의 권력적 DNA를 변종 시키며 성장한다. 승승장구한다. 한때 정계에서 잠시 발을 뺀 그는 미국 최대 석유회사 헬리버튼의 CEO로 자리를 옮긴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이어 국방부 장관을 재임한다. 백악관 최연소 수석 보좌관도 경험한다. 그에게 권력은 한 낯 하찮은 것이었다. 더 올라갈 목표가 없어진 게 아니었다. 딕에게 권력의 정점은 언제나 자신이 손만 뻗으면 붙잡을 수 있는 수동성일 뿐이다. 이미 권력은 그에게 하인이 된 셈이다. 부시 가문의 수치로 불리던 조지 W. 부시의 러닝메이트 제안에 이른바 부시 정부의 권력 구조 세팅을 제안하는 딕 체니의 자신감이 그 해답이다. 딕은 조지를 통해 허물 뿐인 부통령을 일약 권력의 중심이자 보이지 않는 진짜 권력의 핵으로 만들어 버렸다. 권력적 DNA 인자를 이미 시작부터 몸 안에 안고 성장해 온 딕 체니의 태생적 근원이 증명된 셈이다.
 
영화 '바이스' 스틸. 사진/콘텐츠판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다. 네오콘에 버금가는 강경파인 힐러리 전 국무장관 역시 남편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든 대표적인 여성 권력자다. 딕 체니 역시 아내 린 체니가 만들어 낸 권력의 8할 이상 결정체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빌 클린턴이 아내 힐러리의 그늘 안에서 성장한 권력의 허울이라면, 딕 체니는 아내 린 체니의 발화로 인해 불이 당겨진 총알이었을 뿐이다. 이미 그는 처음부터 총알이었다. 스스로가 아직 그것을 몰랐던 것일 뿐.
 
그것을 깨우친 딕 체니는 권력의 정수를 선보인다. 그의 정치는 미디어를 등에 업고 지배의 칼을 휘두른다. 전 국민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버렸다. 아담 맥케이 감독은 딕 체니 재임 시절 미국 국민의 전화 문자 이메일을 감시하고 도청할 수 있었던 부시 행정부의 만행을 폭로한다. 특히나 딕 체니가 자신의 법률 자문을 통해 부통령의 권력적 위치가 행정과 입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소 불위의 위치에 있음을 깨우치며 그것을 휘두른 전횡도 폭로한다. 누군지 모르는, 아니 사실 존재하지도 않던 적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전쟁이 대표적이다. 9.11테러에 대한 대국민의 시선 돌리기는 주효했다. 강력한 미국은 그렇게 딕 체니와 그를 뒷받침한 네오콘 세력의 완벽한 시나리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화 '바이스' 스틸. 사진/콘텐츠판다
 
바이스를 논하는 이 같은 텍스트는 무겁고 차갑고 건조하다. 하지만 비주얼 텍스트 자체는 풍자와 조롱 그리고 세련된 유머로 넘실거린다. 이 영화에선 유독 낚시와 낚시 바늘이 자주 등장한다. 권력의 본질 자체가 상대방을 조율하고 능멸하고 또 그것을 받아 내고 유려하게 넘기는 방식의 차이라면 가장 주효하고 적확한 대체제가 바로 낚시일 것이다. 감독은 이런 낚시의 논법을 통해 정치 프레임 안에서 숨을 쉬는 이 괴물들을 보이지 않는 전쟁을 비꼬았다. 권력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럼즈펠드가 자신의 인턴 딕 체니의 정치적 신념을 묻는 질문에 박장대소를 하며 차가운 웃음을 날리는 장면은 이 낚시의 포인트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명장면 중 하나다. 조시 W. 부시가 딕 체니에게 러닝 메이트 제안을 하고 두 사람의 대화와 낚시의 행위가 교차 편집으로 등장하는 모습 또한 풍자와 비유의 전형이다. 영화 말미에 낚시 바늘이 화면을 가득 채운 것 자체가 딕 체니로 대변하는 네오콘 그리고 네오콘의 수장이던 딕 체니의 바이스’(부통령이자 악)가 대중을 낚아 챈 화법이라고 꼬집는다.
 
딕 체니에게 바이스가 무조건적인 칼날만 들이댄 것은 아니다. 감독은 그의 해피엔딩을 바라기도 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딸 메리의 커밍아웃(실제 그의 딸 메리도 동성애자)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행복한 삶을 선택한 딕 체니의 모습과 함께 영화는 페이크 엔딩을 그에게 선물한다. 보수적이고 또 동성애와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인 공화당 당원인 딕 체니는 딸의 커밍 아웃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족을 택한다. 영화도 그것을 명시한다. 이건 그가 선택했어야 할 삶이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영화 '바이스' 스틸. 사진/콘텐츠판다
 
결국 마지막 그의 죽음이 눈앞에 다다르고 영화 전체의 동력을 이끌어 가던 가상의 내레이터가 전쟁터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심장이 딕 체니의 가슴으로 이식이 된다. 보수적 대중의 믿음이 그의 가슴으로 이어지고 그는 새로운 삶을 부여 받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 네오콘의 망령인 셈이다. 딕 체니의 가슴에서 꺼내 진 죽어가는 심장은 그렇게 숨을 멈추고 영화를 이끌어가며 딕 체니의 과거와 현재를 꼬집던 내레이터의 심장은 그의 가슴으로 옮겨간다. 물론 딕 체니는 영화 말미에 자신을 인터뷰하는 앵커의 질문에 자신 있게 일갈한다. “난 당신들의 가족을 지킨 것을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날 투표로 선택했다. 나는 당신들의 요구대로 행한 것 뿐이다.”
 
그리고 화면 가득히 등장하는 엔딩 크레딧과 낚시 바늘. 그리고 딕 체니는 아직도 현재 살아있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망령은 그렇게 숨을 쉬고 있다. 오늘날 트럼프 정부의 탄생을 이끈 원동력이 어쩌면 미국 권력 시스템의 허울이자 망령으로 불린 ‘The Vice President’(부통령, 바이스) 본질이었음을 그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는 셈이다. 아담 맥케이란 감독의 시선이 여기까지 향하고 있다면 이건 시스템의 문제일까. 신념의 문제일까. ‘바이스가 묻는다. 물론 그건 이라고. 4월 11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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