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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투표제 두고 설왕설래…"주권 강화" 대 “헤지펀드 악용”
법무부, 주주 목소리 키우는 상법 개정안 추진…'주주-기업-학계' 의견 제각각
2019-03-15 00:00:00 2019-03-15 00:00:00
[뉴스토마토 신항섭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투자자는 주주가치 제고와 경영진의 독재 견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나, 상장사들은 외국계 헤지펀드에 악용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법무부는 상법 개정안을 올해 안에 통과시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상법 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이 포함됐다.
 
집중투표제란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될 이사 수 만큼 주주들이 표를 행사하는 제도다. 통상 이사를 선임할 때는 ‘1주 1표’지만, 집중투표제로 5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1주로 5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사의 수만큼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도 가능하다.
 
그 결과 소액주주의 주권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액주주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후보 1명에게 몰표를 행사해 이사로 선임할 수 있고, 대주주가 내세운 후보 중 문제가 있는 경우엔 선임을 저지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기업이 정관변경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어 제도가 유명무실해지자 법무부가 나서 상법개정안에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포함시킨 것이다.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은 정관변경을 통한 집중투표제 배제가 금지된다. '주주들의 신청이 있을 경우'라고 조건을 달았지만 주주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금 대부분의 회사가 정관을 변경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하고 있어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사는 다르게 취급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라며 “일정 주주의 청구가 있는 경우에만 배제할 수 없어 모든 회사가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소액주주들은 나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집중투표제로 대주주들의 절대적인 주권 행사를 견제할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오너리스크가 불거졌던 기업들의 주주들은 환호하고 있다.
 
한 개인투자자는 “재벌이나 오너일가가 지금까지 견제 받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일어났던 일감몰아주기와 주주가치 제고에 소홀했던 점을 생각하면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반면 상장사들은 집중투표제를 반대하고 있다. 외국 투기자본들이 힘을 합쳐 특정 이사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경우 경영권이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감사에 선임된다면, 회사의 주요 정보를 빼돌려 회사가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집중투표제에 대해서는 학계의 의견도 갈린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총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이사선임인데,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경영진이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소통에 적극 나설 것”이라며 “헤지펀드가 기업가치를 높인 좋은 사례도 있는데, 외국 헤지펀드는 무조건 악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고, 굴절된 애국주의다”고 말했다.
 
반면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국기업법연구소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이사 선임을 위한 주총이 정치판이 되고, 이사회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대리하는 집단의 조합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경영권 악화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발표했다.
 
개정안에 대한 논란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을 통해 정관변경 배제를 막는 것은 기업에 대한 자율권 침해라는 인식도 있다. 또 정관변경을 통한 집중투표제 배제는 주총 특별결의 사안으로, 출석 의결권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미 주주들이 찬성한 사항을 일정 주주들의 신청으로 바꾸는 것도 주주 민주주의에도 반한다는 의견이 있다. 여기에 시행령까지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집중투표제는 구체적 내용보다 '의무화'라는 단어로 인해 정치적인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면서 "시장이 비용과 효용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항섭 기자 kalth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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