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2007년 ‘트랜스포머’부터 지난 해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까지 무려 10년 동안 총 5편의 시리즈로 확장된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이질적인 키덜트 문화의 축이었다. 확고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변신 로봇 군단에 매번 흥분하고 환호했다. 시리즈 5편 총 국내 누적 합계 3000만을 훌쩍 넘은 숫자만 봐도 그렇다. 물론 매번 개봉 이후 평단의 시선은 엇갈렸다. 시리즈 전체 연출을 맡은 마이클 베이의 극한의 피로 누적도를 더하는 파괴 액션은 거듭됐다. 단조로워지는 스토리는 현란한 변신 과정과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광대한 ‘트랜스포머 군단’의 등장과 퇴장으로 그 간극을 채워나갔을 뿐이다. 지난 해 시리즈 5편이 개봉한 뒤 ‘트랜스포머’의 리부트 계획이 전면 가동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국내 개봉을 앞둔 ‘범블비’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 ‘노란색 자동차’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에선 최신형 스포츠카 ‘카마로’가 ‘범블비’의 원형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범블비를 프리퀄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뒤 이 시리즈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형도 조금 바뀌었다. 시리즈의 원작 중 한 편인 ‘트랜스포머 제너레이션1’에서 등장한 바 있는 ‘폭스바겐 비틀’로 ‘범블비’가 대체된다. 전 시리즈를 통틀어 등장한 ‘범블비’가 건장한 20대에 가까웠다면 이번 ‘범블비’ 속 주인공은 이제 겨우 10대를 막 벗어난 앳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범블비’란 이름은 도대체 누가 지어준 것 일까. 본명은 무엇일까. 그는 오토봇 군단 가운데 어떻게 지구에 가장 먼저 오게 됐을까. 그는 왜 말을 못하는 것일까. ‘라디오’를 통해 인간과 대화를 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을까. 인간과 가장 소통을 잘하는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보면서 궁금증을 가졌던 ‘범블비’에 대한 모든 것. 아니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기원은 이번 영화 ‘범블비’를 통해 그려지게 된다.
그의 본명은 B-127, 영화 시작과 함께 다급하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낯이 익은 목소리다. 바로 ‘옵티머스 프라임’이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고향별 사이버트론 행성에서 디셉티콘 군단과의 전투 중이다. 반군 세력으로 몰린 오토봇 군단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빠진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반군 세력의 거점 마련으로 지구를 지목하고 ‘B-127’을 먼저 지구로 보낸다. 반군 기지 건설의 첨병 역할로 ‘B-127’이 낙점됐다. 지구에 떨어진 ‘B-127’은 ‘섹터7’ 요원 번즈(존 시나)와 자신을 추격해 온 디셉티콘의 공격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다. 기억마저 잃게 된다. 그는 죽음 직전 본능적으로 몸의 기능을 정지시킨다. 죽음 직전 자신의 시선에 들어온 노란색 비틀 차량을 기억한다. 그는 이제 낡은 노란색 비틀일 뿐이다.
영화 '범블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찰리’(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아빠의 죽음 이후 새아빠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천부적인 기계 수리 능력은 아빠에게 물려 받았다. 엄마는 아빠의 부재를 대신할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 하지만 찰리는 아니다. 10대의 방황일지언정 그는 외롭다. 그는 아빠가 남긴 차량을 수리해 운전하기 위한 목표가 있다. 하지만 힘에 부친다. 좌절한다. 낙심한다. 그런 와중에 그의 눈에 운명처럼 낡은 비틀 한 대가 들어온다. 그렇게 찰리와 ‘범블비’는 만나게 된다.
우선 ‘범블비’는 찰리가 기억을 잃은 ‘B-127’에게 지어 준 이름이다. 목소리를 잃어 노란색 호박벌처럼 ‘웅웅’거리는 소리를 낸다고 지어 준 이름이다. 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마음을 열어간다. 거대한 변신 로봇이지만 자가 생명체인 ‘범블비’는 잃어버린 기억으로 인해 혼란스럽다. 두렵다. 그의 곁에는 이제 ‘찰리’뿐이다. 찰리 역시 외롭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를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도 잠시다. 디셉티콘 군단은 ‘범블비’의 시스템에 내장된 구조 신호를 탐지하고 지구로 날아 든다. ‘섀터’와 ‘드롭킥’ 두 대의 디셉티콘 군단은 섹터7 요원들을 이용해 ‘범블비’를 찾아 나선다. 목적은 오토봇 군단의 리더 ‘옵티머스 프라임’의 행방을 찾는 것이다. 시리즈 최초의 3단 변신이 가능한 ‘섀터’와 ‘드롭킥’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범블비’는 각성한다. 찰리를 위해 범블비는 최후의 반격을 준비한다.
영화 '범블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10년 동안 5편의 시리즈로 등장한 ‘트랜스포머’는 사실 각각의 캐릭터가 담은 스토리와 성격 그리고 집단의 대결에서 등장할 수 있는 대립의 역사가 굵직한 스토리라인이다. 시리즈의 아버지와도 같았던 마이클 베이 역시 처음 시작인 2007년 개봉작 ‘트랜스포머’에선 이 지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불과 다음편인 2편부터 5편까지는 캐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전체의 스타일을 잃어버린 채 크기와 CG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선보인다. 최악의 시리즈물로 거듭난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결국 그렇게 실패의 역사로 퇴장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었다.
제작진은 이를 예감하듯 스핀오프인 ‘범블비’의 메가폰을 애니메이션 연출가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에게 맡겼다. 10대 소녀 ‘찰리’와 앳된 ‘범블비’의 만남은 1980년대 미국 청춘물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흐름과 색채도 아기자기함을 유지했다. 기존의 블록버스터의 스케일을 벗어 던진 ‘범블비’는 캐릭터의 근원에 접근하는 본질적인 방식을 유지했다.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공감은 높아졌으며 인물간의 유기적인 결합도 돋보이게 됐다. 전작의 ‘파괴지왕’적인 스타일은 사라졌다.
영화 '범블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야기가 살아난 지점은 주인공 ‘범블비’의 외형적 변화의 세밀함으로도 구축해냈다. 군용 지프의 강렬한 성격, 비틀의 여성적이면서도 소심한 분위기, 그리고 후반부 카마로의 변신으로 이뤄진 카리스마의 컴백은 ‘범블비’의 복합적인 캐릭터 성격을 그려낸 주요한 연출 포인트다. 이런 외형적 변화는 ‘트랜스포머’ 오토봇 군단 가운데 인간과 가장 교감적인 능력이 뛰어난 ‘범블비’의 숨은 진짜 힘을 드러낸 흥미진진한 연출의 배려다.
그렇다고 단순히 ‘범블비’의 아기자기함과 귀여움을 돋보이게 하는 영화 전체의 톤 앤 매너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정체성인 블록버스터적 스케일도 전혀 잃지 않는다. 오프닝에서 등장한 사이버트론 행성의 대규모 전투 장면, 산기슭을 달리고 넘나들며 빠르게 치고 나가는 ‘범블비’의 질주, ‘섀터’ ‘드롭킥’과 ‘범블비’의 2:1 결투 장면은 기존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화려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영화 '범블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돋보이고 첫 손에 꼽을 만한 점은 ‘범블비’가 웃고 즐기고 슬퍼하고 또 교감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 만들어 낸 이 영화의 미덕이다. 영화 속에서 번즈(존 시나)는 찰리의 간절함에 “그저 기계일 뿐이다”고 소리를 친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외칠 것이다. ‘기계가 아닌 범블비다’라고. 아마도 찰리 역시 그랬을 것이다. ‘범블비’는 그저 기계에 불과했던 변신 로봇 군단 일원이자 말을 잃어버린 어쩌면 가장 기계스러운 로봇에게 생명을 불어 넣은 스핀오프이자 리부트로서 첫 손에 꼽을 만하다.
‘범블비’는 퍼펙트 했고, 스토리는 ‘그레이트’했다. 이 정도면 마이클 베이가 다시는 6편의 메가폰을 잡을 용기를 내지 못할 듯 싶다. 개봉은 오는 25일.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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