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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 이나영의 ‘뷰티풀 데이즈’는 언제일까
노개런티 저예산 복귀작 선택…“주변 걱정 많았죠”
“저와 남편 모두 휴머니즘 가득한 이야기 원해요.”
2018-11-21 00:00:00 2018-11-21 08:35:1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아마도 남편 원빈의 신비주의 전략에 대한 선입견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대중들이 느끼고 있는 오롯한 이미지 각인일까. 배우 이나영은 2015년 원빈과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아시아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놨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주변 동료들의 인식을 단 번에 뒤집은 또 다른 사건이기도 했다. 완벽하게 정점에 서 있던 두 스타의 결합은 화려함의 극치를 예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스몰 웨딩의 끝판을 선보였다. 강원도 정선의 한 밀밭에서 이뤄진 결혼식은 지금도 회자되는 최고의 사건이다. 그리고 그는 3년 동안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 시간 동안 이나영은 아내란 타이틀에 엄마를 더했다. 그리고 배우로 드디어 컴백했다. 놀랍게도 그가 선택한 영화는 초저예산 영화 뷰티풀 데이즈. 출연료를 받기는커녕 제작비를 보탰단다. 이나영의 행보가 기묘했다.
 
이나영. 사진/이든나인
 
지난 12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이나영과 만났다. 상업 영화 출연은 2012년 유하 감독의 하울링이 마지막이다. 결혼 이후 공식적인 활동 자체는 없었다. 간간히 CF를 통해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다. 충무로의 모든 시나리오가 이나영과 그의 남편 원빈을 향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가 넘어갈수록 두 사람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먼저 그 침묵을 깬 것은 이나영이다. 노개런티 출연이 화제였다. 또한 북한 탈북 여성 캐릭터를 맡았던 점이 두 번째로 놀라운 지점이었다.
 
하하하.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요(웃음).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시긴 했어요. 글쎄요. 우선 영화에 대해 말씀 드리면 시나리오를 되게 재미있게 봤어요. 제가 의외로 마이너적인 감성이 강해서인지 모르겠는데 전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한 여성이 겪는 시간의 굴곡이 너무도 가슴 깊이 와 닿았어요. 이 정도의 울림을 가진 영화가 충무로에서도 나왔단 점에 놀라웠죠. 이건 놓치면 제가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는 너무 좋은 시나리오를 받았단 생각에 들뜬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단다. 자신이 영화를 통해 해보고 싶던 장면과 감정이 거의 대부분 이 영화에 담겨 있었다고. 하지만 궁금증은 남아 있었단다. 우선 연출자인 감독에게 시선이 쏠렸다. 어떤 생각으로 이런 얘기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그리고 왜 이런 얘기를 하려 하는지가 중요했다고.
 
이나영. 사진/이든나인
 
전 마음에 들었지만 이걸 만드시는 감독님의 생각도 중요했어요. 도대체 어떤 생각이신지 너무 궁금했죠. 먼저 감독님이 만드신 다큐를 찾아서 봤어요. 그걸 보자 저의 의문점 대부분이 해소가 됐어요. 일관되게 이런 얘기에 시선을 주고 계셨더라고요. 그리고 감독님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더욱 확신을 가졌죠. 이런 분이라면 나를 던져도 충분히 납득이 되겠단 확신이 들었어요. 고민할 여지가 거의 전부 사라진 셈이었죠.”
 
하지만 고민이 사라졌다고 쉽게 접근할 작품은 아니었다. 우선 그는 이 영화에서 다양한 모습을 연기해야 한다. 촌스럽게 수수한 10대 소녀부터 술집에 다니는 도발적인 20대 그리고 술집 마담이 된 30, 거기에 대학생 아들을 둔 엄마까지. 무려 20년의 시간을 넘나들어야 했다. 언어도 문제였다. 서울말부터 연변 말 그리고 중국어 연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배역은 이름이 없다. 그저 엄마일 뿐이다.
 
모든 작품 속 배역이 그랬지만 정말 어려웠죠. 우선 10대 소녀는 하하하. 너무 민망하기도 했고(웃음). 이 여성이 가장 크게 가져가야 할 지점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라고 봤죠. 탈북을 위해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평생 동안 안고 살아가잖아요. 그 삶을 상상해 봤어요. 그래서 30대의 연기가 더 어려웠어요. 그 고통의 깊이가 쉽게 와 닿지 않더라고요. 그런 고통을 안고 사는 여자가 장성한 아들을 만났을 때 도대체 어떤 감정이고 마음일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나영. 사진/이든나인
 
20년 세월을 연기해야 했던 이나영이다. 연령대별 감정의 진폭도 달랐다. 하지만 대중들의 예상과 달리 그는 예전 자신의 출연작과 크게 다르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인물을 만들어 나갔을 뿐이란다. 물론 그 감정의 폭과 색깔은 연기를 통해 다르게 나갔다. 느끼는 감정이 시간을 통해 분명히 다르니 스스로를 통해 드러나는 연기도 달라야 했다.
 
예전 하울링때도 그랬어요. 여형사 캐릭터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느낌의 여형사 이미지를 그리고 싶진 않았거든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에요. 일반적으로 탈북 여성이라고 해서 그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으려 했죠. 다만 나이 대에 걸 맞는 외형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의상과 분장을 통해 관객들이 느끼실 감정의 폭을 더 키우려고 했죠. 물론 연기를 하면서도 젠첸 엄마는 이랬을까’ ‘그때 이런 일을 겪었으니 그랬지등 스스로의 감정을 잘 잡고 갔죠.”
 
눈길을 끄는 점은 이나영이 연기한 배역의 이름이다. 이름이 없다. 그저 엄마. 그 두 글자에는 담긴 뜻이 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표현하면 그 배역은 젠첸의 엄마가 아니다. 그저 이 배역에는 여백을 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 여백은 영화가 준 것이다. 그리고 그 여백은 배우 이나영이 바라보고 채웠다. 아니 채우기 보단 그것을 보여주면 됐다. 이 배역에 이 정도의 여백이 있다는 것을.
 
이나영. 사진/이든나인
 
그게 너무 좋았어요. 이름을 주면 억지로 그 인물을 만들어 냈단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어요. 이 영화에선 그냥 전 엄마였어요. 사연이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죠. 그 사연이 이름을 대신한다고 봤어요. 실제로 탈북 여성들 중에 이름이 없는 분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생명에 대한 위협 때문에 이름도 바꾸고 그러신데요. 개명도 거의 대부분 하신다고 하고요. 이 영화에선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정체성이었어요. 이방인이란.”
 
영화에 대한 얘기는 그의 입을 통해 끊임이 없을 듯했다. 그만큼 그는 이번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 그렇게 느껴졌다. 이 영화를 위해 공백기가 그렇게 길었던 듯 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그는 다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어느 순간부터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까다롭고 신중해졌다기 보단 하고 싶은 인연을 기다렸단 점이 맞을 듯 싶어 보였다.
 
이나영. 사진/이든나인
 
저도 그렇지만 남편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저희가 부부인가봐요(웃음). 되게 비슷해요. ‘이런 영화로 이렇게 나왔다라며 자신 있게 선보이고 싶었어요. 뭔가 인간적이고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에 눈길이 가요. 남편도 그런 점이 강하고요. 해야 하니깐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꼭 하고 싶은 걸 만나고 싶었어요. 장르물이 너무 많은 데 그 속에서 좀 다른 얘기, 휴머니즘이 많은 얘기를 기다려 왔어요. 남편도 그러고 있고요. 그래서 저희가 잘 맞나 봐요. 하하하.”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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