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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들, 사과부터 먼저 하는 게 순서 아닌가"
"'원세훈 재판 영향' 사실 아니다"…법조계 "국민들 충격, 재판 개입 의혹만 있는게 아니야"
2018-01-24 09:46:38 2018-01-24 09:47:57
[뉴스토마토 최기철·김광연 기자]현직 대법관 13명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항소심 재판에 대한 청와대 개입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며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원 전 국정원장의 재판에 개입을 시도한 증거가 나온 상황에서 나온 대법원의 첫 공식반응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대법관 13명은 23일 법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원회 조사결과와 관련해 간담회를 가졌다. 대법관들은 "일부 언론은 대법원이 외부기관의 요구대로 특정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원심판결을 파기함으로써, 외부기관이 대법원의 특정사건에 대한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법원이 이에 영향을 받았다는 취지로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한 소부의 합의를 거친 결과 증거법칙을 비롯한 법령 위반의 문제가 지적됐고, 이 사건이 갖는 사회·정치적 중요성까지 아울러 고려했다"며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할 사안으로 분류하여 전원합의체의 심리에 따라 관여 대법관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판결을 선고했다"고 강조했다.
 
또 "관여 대법관들은 재판에 관해 사법부 내외부의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며 "일부 언론의 위와 같은 보도는 사실과 달라 국민들과 사법부 구성원들에게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불필요한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서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 간담회는 현 대법관 13명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당시 관여 대법관들의 입장뿐만 아니라 이를 확인한 대법관들 모두의 입장으로 보면 된다"고 밝혔다.
 
앞서 전날 추가 조사위원회는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 요구로 원 전 원장 항소심을 담당한 재판부 동향을 파악해 보고했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에 대한 전원합의체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들 13명 중 남아 있는 대법관은 총 7명이다. 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조희대·권순일·박상옥 대법관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주심을 맡았던 민일영 대법관을 비롯한 6명이 퇴임했다.
 
이번 대법관들의 입장 표명에 대해 판사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일단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국민들이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은 청와대와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시도와 함께 특정 법관들에 대한 법원행정처가 자행한 사찰 수준의 동향파악"이라며 "사법부가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국민에게 먼저 사과하는 것이 먼저다. 이번 일로 재판에 영향이 없었음은 그 다음에 해명해도 될 일"이라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또 다른 중견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대법원 재판부와 법원행정처는 기능면에서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면서도 "대법관들의 이번 해명이 언론 보도에 대한 단순한 반박 수준인 것은 유감"이라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또 "대법원장의 부의가 없는 이상 대법관 회의가 이번 사태에 대한 처리를 논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법원행정처의 행위에 대한 당부를 언급할 경우 대법원 재판부와 법원행정처의 경계가 모호해 져 또 다른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렇더라도 앞뒤 설명 없이 이번과 같이 입장을 발표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판사들은 말을 아꼈다. 그러나 이번 대법관들의 입장 발표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비등한 눈치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원 전 원장에 대한 재판이 외부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음을 밝히는 것은 국민들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대법관들의 해명 그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이런 해명이 있었으면 논란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들이 오늘 낸 입장은 추가조사위 조사결과에 대한 평가를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추가조사위가 문제점을 지적한 문건과 관련해 청와대 개입에 따라 대법원 전원합의가 열리고 파기환송의 결과가 나왔다는 단정적 보도를 한 일부 내용이 사실과 전혀 다르며, 이 내용에 관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은 채 방치할 경우 대법원 재판에 대한 신뢰가 크게 문제될 수 있다는 엄중성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추가조사위 조사결과에 대한 입장은 이번주 중 대법원장이 별도로, 최종적으로 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1월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김광연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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