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현장에서)법원행정처의 권한 남용, 재발 대책 철저히 마련해야
2018-01-24 06:00:00 2018-01-24 08:20:36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지난 22일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살피고, 청와대 요구에 따라 특정 재판부 동향을 파악했다.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을 분류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지만, 법관의 독립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문건이 다수 드러났다. 조사위는 인사상 불이익 여부가 실제로 실행됐는지 확인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라는 표현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으나, 법관을 평가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마련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추가조사위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원장 시절 행정처는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의견을 낸 일선 판사들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적 성향과 가족관계 등을 파악하는 등 동향 수집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파악해 문건을 작성하고, 진보성향의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를 '핵심그룹'으로 규정했다. 또 정치성향에 따라 보수·진보, 온건·강성으로 나눠 법관을 분류했다. 추가조사위 말마따나 그 자체로 부적절한 사법행정권의 행사이고, 판사 회의에 대한 부당한 개입으로 보일 소지가 있다.
 
행정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항소심 판결 전 재판부의 동향도 파악해 보고했다. 선고 후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불만을 표시하자 상고법원과 관련한 중요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추진하자고 제안하는 등의 대책도 마련했다. 이는 청와대가 선고 전 법무비서관실을 통해 법원행정처에 전망을 문의하자 관련 사항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상고법원 설치를 제안해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한 것이다. 법원행정처의 이 같은 행위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는 헌법 103조의 실현을 위축시키고 재판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사항에 대해선 책임 소재를 가리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결과와 과정을 두고 11개월여 동안 겪어온 법원 내 갈등을 봉합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 사법행정이 재판을 보조할 수 있도록 법원행정처 권한을 분산하고 인력도 최소한으로 줄이는 등 공정한 재판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와 관련해 "조사결과를 잘 살펴보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은 다음 신중하게 입장을 정해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번 조사 결과를 법관의 독립을 위한 내부 토양을 마련하는 데 반영하면서 사법개혁을 충실히 진행해 나가야 한다. 검찰에서 그나마 개혁 의지가 읽히는 것도 검찰총장 친위대였던 범정기획관실을 해체 수준에 가깝게 개편했다. 어물어물하다가는 법원행정처 대안으로 거론되는 사법평의회가 정말 헌법 안에 명시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홍연 사회부 기자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