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삼성이 잃은 것은 ‘미래’다
입력 : 2017-08-09 15:50:21 수정 : 2017-08-09 15:50:2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가 오는 25일 내려진다. 특검은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삼성은 패닉에 빠졌다. 다들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떨궜다. “삼성 역사에서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한탄도 들렸다. 재판부의 최종 결단이 남았지만 상황이 좋질 않다. 이 와중에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다수의 청탁성 문자는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검찰, 국정원, 법원, 언론 등 대한민국의 힘 있는 기관들이 죄다 삼성의 돈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삼성공화국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나며 엄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무죄를 다루는 법리 다툼에 여론이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만큼은 삼성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삼성이 간과하는 패착도 발견된다. 다급한 마음에 이재용 부회장을 구하려 모든 책임을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앞으로 미뤘지만, 이 과정에서 삼성의 미래는 사라졌다. 삼성 측 주장대로라면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삼성의 최고의사결정권자는 최 전 실장이었으며, 이 부회장은 “곱게 자라고”, “자본시장법도 잘 모르는”, “공부를 시켜야 할” 만년 후계자에 불과했다. 미래전략실 해체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 등 일련의 개혁 조치들도 이 부회장이 최 전 실장의 ‘코치’를 받아 대리로 약속했을 뿐이다. 문제가 되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등 그룹의 굵직한 사안들도 최 전 실장이 모든 권한을 갖고 단독으로 결정했다. 삼성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삼성은 이 부회장의 부재보다 최 전 실장의 공백을 염려해야 할 처지다.
 
123일간 진행된 53차례의 치열했던 공판은 삼성 스스로 ‘이재용 시대’를 부정하는 족쇄가 됐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이를 “'이재용은 바보' 전략”이라고 꼬집었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 부회장과 삼성의 미래에는 더 큰 비용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전략 실패를 지적했다. 여타 재벌그룹 사람들도 “삼성의 절박함은 이해하나 이 부회장을 너무 격하시켰다”고 입을 모았다. 세상 물정 모르며, 무엇 하나 결정한 적 없는, 그저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가 도련님이 이끌 삼성에 시장이 그 어떤 매도를 해도 항변할 수 없는 처지로 스스로를 내몰았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의심을 품으며 ‘이재용의 삼성’을 불안하게 지켜봤던 시장이다. 그래서일까. 이 부회장에 대한 예상을 뛰어넘는 구형에도 시장은 별다른 동요 없이 삼성전자의 사상 최고가를 떠받들고 있다.
 
그렇게 삼성은 미래를 잃었다. 설사 이재용 구하기에 성공하더라도, 당당하지 못한 논리적 모순은 삼성의 신화와 위상을 복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촛불이 만들어낸 세상의 변화는 이건희 회장을 자유롭게 했던 사상 초유의 원포인트 사면과 같은 전례도 기대하기 힘들게 한다. 어쩌면 삼성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었을 수 있다. 눈앞의 이익만 좇다 정작 미래를 부정한 삼성의 잘못된 전략은 국가경제에도 큰 손실이다. 삼성의 행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유다.
 
김기성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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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성

뉴스토마토 산업1부 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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