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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대선주자와 페이스메이커
2017-03-30 06:00:00 2017-03-30 06:00:00
[뉴스토마토 권순철 기자]영화 <페이스 메이커>를 보면 직업이 페이스 메이커인 선수가 성공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주민호(김명민)는 아무 메달도, 영광도 바랄 수 없는 선수다. 그의 임무는 오직 국가대표 마라토너의 승리를 위해 전체거리 41.195km 중 30km까지만 선두로 달려주고 그 이후에 경기에서 빠지는 것이다. 주민호는 30km까지 달리고 목적을 다했지만 다리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달려 국가대표 선수와 1위를 놓고 다투다 아쉽게 2위로 골인한다. 비록 페이스 메이커였지만 무대의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된 것이다.
 
페이스 메이커는 마라톤, 수영 등 운동경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도 페이스 메이커가 있다. 각 당은 페이스 메이커라고 이름 붙이진 않지만 젊고 유능한 정치인들에게 대선에 출마하도록 권유한다. 특히 지방정부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지자체장들은 페이스 메이커가 되기에 훌륭한 자원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안희정 충남지사,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다.
 
지자체장들 입장에서도 대선에 나서는 것이 손해는 아니다. 가장 큰 혜택은 비록 당내 경선이지만 전국적인 선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전국에 자기의 조직을 만들 수 있고, 이는 차기 대선 도전에서 유리한 발판이 될 수 있다. 또 대선 후보로 나서면 국민적 인지도를 끌어올려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할 수 있다. 경선에서 비록 패배하더라도 다시 지자체장직을 유지할 수 있다. 지난 2012년 김문수 당시 경기지사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 박근혜 후보에 패한 이후 도지사직에 복귀했다.
 
비록 경선에서 유승민 의원에게 패했지만 남경필 지사도 당의 출마 요청이 있었던으로 알려졌고, 지금은 페이스 메이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커버린 안희정 충남지사도 지지율이 낮았던 출마 초기에는 차기 대선을 노리고 선거에 뛰어들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경선판을 키우기 위해 당 안팎으로부터 출마 권유를 받고 고심 끝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당이 좀 더 많은 페이스 메이커를 대선에 투입하려는 것은 국민들의 시선을 자기 당 대선 후보에게 묶어두기 위해서다. 젊고 능력있는 후보들이 경선에 참여하면 그만큼 국민적 주목도도 높고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지지율 상승 효과도 나타난다. 특히 경선이 끝나면 이른바 컨벤션 효과가 나타나 승자의 지지율이 추가로 오를 수 있다.
 
반면 아무리 지지율이 높은 후보라도 당내에서 적수가 없어서 사실상 추대 형식으로 대선 후보가 되면 국민적 관심이 떨어져 지지율 정체현상을 겪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본선 경쟁력도 자연스럽게 감소할 수 밖에 없다.
 
마라톤 등 스포츠 분야에서의 페이스 메이커는 그야말로 영화 속 장면을 제외하고는 페이스 메이커에 그친다. 하지만 정치판에서의 페이스 메이커는 주전 선수와 언제든지 운명이 되바뀔 수 있다. 아무리 지지율 1위 후보라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그리고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부정적 사실들이 밝혀질 경우 전세가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 논란으로 ‘탄핵 역풍’으로 승승장구 하던 열린우리당의 상승세에 급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했다.
 
페이스 메이커의 성공 여부는 대선 후보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얼마나 갖췄는가에 달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꿰뚫고 국가의 비전을 국민에게 정확하게 제시하면 대선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무지렁이 국민들도 누가 우리나라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고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정확이 알아본다는 것을 각 후보는 명심해야 한다.
권순철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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