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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장미대선'에 바란다
2017-03-20 14:07:59 2017-03-20 18:46:51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역사적 선고를 통해 약 5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의 결말을 지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이승만 대통령의 탄핵에 이어 2번째 대통령 탄핵이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현직 대통령이 헌법에 의해 파면당한 것은 헌정사에 있어 불행한 일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확인시킨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법치주의의 정점으로 볼 수 있다. 특히 134일 동안 연인원 1600만명의 국민이 단 한 명의 사상자 없는 비폭력 평화적 촛불집회를 통해 국가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린 것은 세계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자랑스러운 시민명예혁명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번 촛불시민혁명을 놓고 일각에서 노벨평화상까지 추진하자고 할 만큼 감동적인 민주주의 의식을 보여준 우리 국민은 이제 국정농단으로 추락한 대한민국을 재건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 대선은 흔히 ‘장미대선’으로 불린다. 이는 대선일이 5월9일로 정해지면서 5월에 피는 장미를 빗대어 나온 표현이다. 탄핵에 의한 대통령 보궐선거에는 어울리지 않는 낭만적인 표현이지만, 그 만큼이나 이번 대선은 국민이 선택한 가장 드라마틱한 선거임에는 분명하다.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 맞이하게 된 5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이합집산에 여념이 없다. 현재 압도적 지지정당 1위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경선은 실질적으론 대선 본선이라는 평가 속에 지지율 1위 문재인 후보를 안희정 지사와 이재명 시장이 뒤쫓는 형국이다. 대선판 전체로 보면 앞서가는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등이 개헌을 연결고리로 한 3당 연대의 빅텐트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중도단일화나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의 보수단일화에 대한 전망도 적지 않다. 지금 정치권은 국민이 만들어 준 새로운 역사 앞에 정치공학적 이해관계만 가득한 모습이다.
 
우리 국민은 주권자로서 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국민을 항상 실망시킨 것은 정치권과 위정자들이었다. 우리 국민은 1960년 4월19일 130여명 사망자와 1000여명 부상자라는 엄청난 희생 끝에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며 제2공화국을 열었다. 그러나 국민에 의해 세워진 민주정부는 박정희를 중심으로 일부 정치군인들이 일으킨 5·16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고, 대한민국은 18년간 군사독재라는 기나긴 민주주의의 암흑기를 겪어야 했다. 1979년 박정희가 암살된 이후 1980년 민주화의 열망 아래 일어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전두환 신군부의 살인적 탄압으로 수백명의 시민이 희생되어야 했으며, 민주화의 피를 제물로 제5공화국 전두환정권이 8년 동안 이어졌다. 그럼에도 광주민주화운동이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87년 6월항쟁의 기반이 됐다. 광주시민들의 희생과 민주주의를 갈망한 우리 국민들의 염원을 통해 얻어진 값진 성과였다. 숭고한 국민적 희생으로 얻어진 대통령 직선제의 결과는 야당의 분열로 인한 어부지리로 전두환의 후계자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국민적 분노와 허탈감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과 정치권은 국민의 희생 위에 성취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정치적 이해 속에 침몰시켰다.
 
이렇듯 우리 국민은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87년 6월항쟁 속에서 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정치권과 위정자들에게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살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정치권과 위정자들은 그 기회의 순간마다 국민의 뜻을 제대로 살린 적이 없다.
 
이제 우리 국민은 다시 한 번 정치권과 위정자들에게 대한민국을 살릴 기회를 주고 있다. 2017년 정치권과 위정자들이 제대로 자기소명을 다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폭력 평화적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헌법을 위배하고 국정농단에 놀아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그리고 5월 대선을 통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을 제대로 살릴 기회이자 책무를 정치권과 위정자들에게 부여했다. 이제 더 이상 정치권과 위정자들은 국민이 준 기회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과거 보여줬던 정치공학적 이해타산과 계파이익을 위한 이합집합을 거듭한다면 대통령을 파면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5월 대선에서 위대한 국민에 걸맞은 정치권의 성숙된 모습을 기대한다.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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