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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2016-11-30 13:36:44 2016-11-30 13:36:44
촛불이 횃불이 되고 횃불이 들불이 될 조짐이다. 5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국민들은 전국적으로 200만 명에 육박했다. ‘3.5%의 법칙(인구의 3.5%이상이 비폭력 시위를 할 경우 문제 해결이 가능해진다는 이론)’을 제시한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에 의하면 해결이 되어도 벌써 해결이 되었어야만 한다.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가뜩이나 취임이후 불통을 지적해왔지만 촛불 정국에서 대통령은 침묵의 장벽을 더 높게, 더 두껍게 쌓고 있다. 국민이 없는 국가는 없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통령은 존재 가치가 없다. 임기동안 마치 벼랑 끝에 놓인 들짐승마냥 악으로 깡으로 최선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이다. 개인의 이익이나 주변의 이해관계에 눈 돌릴 틈조차 없어야 하고 없는 것이 마땅하다. 최순실로부터 비롯된 국정농단 사태는 단순한 국정 마비에 그치지 않고 역대 대통령의 순수한 국가 최고 지도자의 의미마저 퇴색시키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역대 최저 지지율 기록 이전 최저 지지율을 나타냈었다. 그렇지만 김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은 개인 비리와는 거리가 멀다. 임기 막바지에 불어 닥친 아시아발 외환위기 때문이었고 권력 남용 성격이 짙은 아들과 관련된 의혹 탓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 이전 가장 낮은 지지율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도매 급으로 비교당하는 수모를 당하는 모습이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철권 통치하에서 민주화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로 온당하지도 적법하지도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과 국민들에게 김 전 대통령을 재소환하게 만든데 대한 자괴감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편치 못한 상황으로 만들어 버렸다. 북한에 대한 제재 강화로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최근 들어 입 밖에 꺼내기조차 부담스러운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동지였던 인물이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현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면서 어리둥절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치하에서 가장 많은 정치적 탄압을 당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들이 국정농단 사태로 추락하는 박 대통령의 구원투수가 될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참혹한 상태가 되었다. 대통령 리더십조차 상실해버린 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나쁜 대통령’이란 꼬리표를 붙였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박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평가할 수준이나 될는지 의문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 당시 가혹하게 조사했던 주역들이 현 정부의 검찰 요직에 우뚝 서고 법조계의 각종 비리의 중심에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수사 받아야 할 사람이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는 비정상적 상황이 벌어졌던 셈이다. 누구를 평가할 자격도 없는 인사들로부터 검증을 당해야 했던 노 전 대통령은 무슨 죄가 있는 것인가.
 
직전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4대강 사업은 국민들로부터 비판이 뒤따랐고 임기 첫해 광우병 촛불 집회는 이 전 대통령의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지지율이 나타날 때마다 추락한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온 것도 사실이다. 친서민 중도 실용정책이 그랬고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라디오 국민 담화를 꾸준하게 실천해 온 점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해줄 만한 내용이다. 그런 이 대통령을 향해 2008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공천을 문제 삼아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비판한 박 대통령이었다. 그때와 굳이 견준다면 이번 게이트로 인해 국민들이 속고 분통터지는 심정은 가히 비할 데가 못된다.
 
가장 큰 안타까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게 만든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다. 이번 게이트로 가장 크게 상처 입는 이는 박 대통령 자신도 아닌 바로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이다. 많은 국민들은 아버지 당대에 최태민 일가를 제거하지 못한 박 전 대통령을 원망하고 있다. 딸인 박 대통령을 사익은 멀리하고 공익을 우선하는 리더로 육성하지 못한 박 전 대통령을 향해 가슴을 치며 원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더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의 이미지와 업적에 금이 가야만 박 대통령이 작금의 분노와 촛불 민심을 있는 그대로 깨달을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을 향한 역대 대통령들의 외마디 소리가 한라에서 백두까지 들린다.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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