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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실용만 좇다 열정이 식는다
2016-10-27 11:17:09 2016-10-27 15:55:47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삼성의 새만금 투자 약속은 결국 공수표가 됐다. 2011년 새만금 투자 협약을 체결한 이후 줄곧 가짜협약 논란을 빚어온 끝에 빚어진 결론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를 경남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한 전북도민 달래기용 정치쇼였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대해 삼성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투자 여력이 없다고 해명했다.
 
새만금 MOU가 체결됐던 그해 삼성은 인천시 송도지구에도 2조원이 넘는 바이오 사업 투자를 약속했다. 50년간 부지 무상임대와 각종 세금 감면 등 파격적인 혜택과 함께 실행으로 옮겨졌다. 여기엔 국내 대기업이 외국인 소수 지분만으로 외국인투자유치제도의 수혜를 입는 편법도 동원됐다. 삼성은 인천시와 계약 체결 당시에만 외국인투자기업 지분 요건인 10%를 충족했다.
 
혜택이 없으면 등을 돌린다. 삼성은 반도체나 모바일, 가전에서도 중국과 베트남 등 저임금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투자에 집중해왔다. 국내에 있던 공장까지 해외로 이전했다. 협력사들도 함께 해외로 나가면서 삼성의 공백을 맞은 지역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놓였다. 철저하게 경제논리만 지배하는 삼성의 투자 행보다. 
 
삼성은 지금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처했다. 삼성과 함께 전차군단을 이끌었던 현대차의 파업까지 겹쳐 국가경제에 대한 우려로 번지는 형국이다. 싫어도 국산폰을 애용하는 것이 국가경제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에 대한 국민감정에 그만한 의리가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시장의 외면은 기업에겐 재앙이다.
 
공교롭게도 삼성과 LG는 나란히 모바일 사업으로 고초를 겪고 있다. 문제를 자초한 근본 원인이 같다. 경쟁사를 의식하며 출시를 서두른 것이 화근이 됐다. 발화 문제로 단종된 갤럭시노트7, 초기 수율 문제가 컸던 G5 모두 사전 검증이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속도 위주의 경영방식이 커다란 허점을 노출했다. 성과에만 집착하다 품질이란 기본을 놓쳤다. 전통의 미덕인 장인정신, 완벽주의는 장삿속에 파묻혔다.
 
사회공헌 지출엔 인색했던 재벌들이 정체가 불분명한 미르·K스포츠 재단에는 거액을 투척했다. 정권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 등이 개입해 강제 모금을 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출연 기업들도 그런 사실을 구태여 부정하진 않고 있다. 피해자 코스프레다. 공범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총수 사면 등의 특혜에 대한 기대도 분명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배임, 횡령, 뇌물죄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사업보국, 사회적책임, 고객제일, 품질경영, 공정경쟁 등의 기업가정신과 경영철학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실속, 효율, 성과주의만을 지향하면서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근 큰 문제가 되는 해외로의 인력 유출도 부작용 중 하나다. 국내 대기업 기술·연구진이 거액의 연봉 제안을 받고 중국이나 베트남 등 해외 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숫자만 따지는 조직문화 속에서 구성원에 대한 애사심이나 애국심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현대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과거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정신이 높은 나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기업가정신이 한국경제 고도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가정신 지수는 1980년대 이후 계속 하락해 지금은 OECD 국가 중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기업 구성원들의 일에 대한 몰입도도 현격히 떨어졌다. 1980년대에는 몰입도가 일본보다 높았지만 2010년대 들어 글로벌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구성원들이 조건만을 찾아 직장을 자주 바꾸게 되면서 근속기간도 짧아지는 추세다. 
 
조직의 활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목표 달성도 쉽지 않다. 경직된 조직문화와 틀에 맞춘 시스템을 통해 결과물을 짜낼 수는 있지만, 그 속에서 도전정신이나 혁신, 창의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래 성장을 위한 핵심 성장동력을 잃고 표류할 수 있다. 기업들이 이윤만을 쫓으면서 구성원의 열정도 차갑게 식고 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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