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중국 합작사업이 국가산업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최태원 회장의 주도로 성사된 SK-시노펙 합작 납사분해설비(NCC) 프로젝트는 현지 정부가 통제하는 핵심 사업이다. 개방이 이례적였던 만큼, SK는 수십년간 쌓아온 석유화학 기술력을 계약 메리트로 제공했다. 우리정부는 뒤늦게 NCC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술보호 조치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확정·발표했다. NCC의 국제 경쟁력 유지 방안이 5대 핵심전략 중 하나로 선정됐다. 우리나라 NCC 운영효율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판단하고 기술 보호와 경쟁력 강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게 골자다. 특히 설비운용 기술의 유출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기술 노하우를 지식재산권(기술특허·영업비밀)으로 보호키로 했다.
반면 SK는 NCC 기술을 토대로 중국 파트너와의 합작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SK는 2006년 처음 시노펙과 NCC 합작 프로젝트에 합의한 이후 7년의 노력 끝에 2013년 최종계약을 성사시켰다. 시노펙이 65%, SK가 35%의 지분을 가지며 합작사명은 중한석화다. NCC는 중국 국영기업들이 수급 조절을 통해 전방 민간기업들을 통제하는 사실상 정부 독점사업이다. 계약 성사를 위해 최태원 회장이 직접 중국 정부 및 시노펙 관계자를 10여차례나 면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면엔 기술 제공이란 상당한 부담도 떠안았다.
중한석화는 NCC설비 가동 첫해인 2014년부터 흑자를 내며 시노펙의 기존 에틸렌 공장 중에서 최고 수준의 운영효율을 자랑했다. SK가 국내 엔지니어 26명을 현지에 파견해 운영시스템을 싹 바꿨다. 이에 힘입어 SK는 사업 확장을 추진 중이다. 올 들어 중한석화의 NCC 공장을 기존 연산 80만t에서 100만t으로 증설했으며, 최근 시노펙의 또 다른 에틸렌 공장(상하이 세코)의 지분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SK로서는 중국 내수시장에 침투해 기회를 얻지만, 국내 화학산업은 갈수록 자급력을 높이는 중국 화학산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NCC에서 만드는 에틸렌은 각종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원료로 쓰여 ‘산업의 쌀’로 불린다. 에틸렌 가격이 제품 원가의 60~70%를 차지할 정도로 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 NCC의 중요성과 함께, SK의 에틸렌 기술을 온전한 사유재산으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1972년 국내 최초로 NCC를 가동한 국영 석유기업 대한석유공사가 SK의 전신이다. 이후에도 SK는 국가연구기관인 한국화학연구원 등과 에틸렌 제조 관련 기술을 공동개발해 이전받았다.
산업기술 유출 우려 속에 미국, 독일과 일본 등 선진 국가에선 정부가 나서 중국과의 합작 투자를 자제시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자급률을 높이고, 중동산 저가 제품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이 보유한 특유의 운영기술은 차별화된 경쟁력”이라며 기술 유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에서의 합작사업은 통상 현지 파트너가 정부 로비를 맡고 우리는 기술을 제공하는 식”이라며 “빠른 성장에 도움이 되나 파트너의 기술 습득 이후에는 토사구팽 당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SK 측은 "합작사업이기 때문에 기술유출이란 표현은 적합지 않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