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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인권은 ‘확인’하는 과정에 있다.
2016-10-21 06:00:00 2017-01-11 00:48:45
사법연수원에서 있었던 손석희 아나운서의 특강이 문득 떠오른다. 기억의 수레바퀴는 강의 내용보다는 손 아나운서의 질문에 멈춘다. ‘간통죄가 위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라’는 요청에 많은 연수생들이 손을 든 장면이다. 손 아나운서는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웃으면서 내일 ‘특종뉴스’로 나가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뒤인 작년 2월 헌법재판소는 행복추구권,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권을 근거로 간통죄에 대해 위헌선언을 했다. 우리사회는 환영과 실망이 교차했다. 간통의 윤리적 비난, 가정파탄의 우려를 뒤로 하고 내린 헌법재판관들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은 법조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을 당시 사법연수생 대부분은 간통죄 위헌선고가 내려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작년 미국연방헌법재판소는 동성 간 결혼을 불허하는 여러 주법에 대해 위헌선언을 했다. 유력대선후보로 떠올랐던 버니 샌더스가 기독교 재단 학교에서 한 특강이 생각난다. 동성결혼을 옹호하는 연설도중 터져나온 청중의 환호와 박수소리를 들으면서 미국사회의 인권수준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도 동성간 연애와 결혼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성서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한다. 기독교 정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미국사회에서 내린 연방대법원의 결정을 보면서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올여름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회원 약 1200여명이 답변한 회원 설문조사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헌법상 기본권에 포함시켜야 하고,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답변이 월등히 높았다. 며칠 전 광주지방법원 항소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무죄선고는 처음이다. 적지 않은 분량의 판결문은 많은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큰 화두를 던졌다. 그 동안 국회나 학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마련을 논의했으나 별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2004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결을 시작으로 병역법에 대한 최고법원의 판단은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도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고 대체복무제를 입법화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한 위헌심판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한 변호사가 군법무관으로서 안정적인 군복무를 포기하고, 1년 6개월간의 징역형 집행을 선택했다. 몇 차례 전화와 이메일로 그 변호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에겐 단순한 병역기피문제를 넘어서는 또 다른 중요한 가치가 자리잡고 있었다. 타인이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양심의 영역이었다. 매년 500여명 이상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군복무 대신 1년 6개월의 감옥행을 선택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대체복무로서 국방의 의무를 대신하려는 의사는 충분히 확인되었다.
 
남북대치상황과 국가안보, 군복무자들과 평등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병력자원감소우려 목소리가 높다. 반면 유엔자유권위원회도,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일률적인 형사처벌 대신 대체복무제 마련을 권고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본래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를 다시 한번 성찰해야 할 때이다. 나아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선별하느냐, 그리고 대체복무기간과 강도를 어느 정도로 정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아직 우리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이제 우리사회는 병역법에 대한 세 번째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맞이할 것이다. 국가안보와 양심의 자유 간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결정과는 별도로 우리사회는 대체복무제를 통한 제3의 길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의 성숙도를 높일 때도 되었다. 인권을 확인하는 일은 국가와 사회의 의무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는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존재하던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간통죄 위헌 선언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은 인권을 확인해주었다.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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