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한진해운과 로마시장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대표
2016-09-25 13:21:49 2016-09-25 13:21:49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있다. 위로는 휴전선이 있어 육로로는 갈 곳이 없다. 한편으로는 답답한 환경이지만 해양 국가로서의 존재감을 맘껏 과시할 수도 있다. 조선과 해운업은 한국이 고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지리적 환경과 맞물려 급속도의 성장을 했다. 조선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1위를 내달렸고 해운은 물류와 교통을 전문으로 성장한 모기업을 바탕으로 한진해운이 국내 1위 선사 자리에 올랐다. 현대그룹의 현대상선도 한진해운과 경쟁하며 세계적인 해운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이들 기업의 성장에는 기업 스스로의 노력도 컸겠지만 국적 항공사를 자랑스럽게 이용해온 화주들의 협력이 큰 보탬이 되었다. 비상시에는 전쟁 및 전략 물자를 수송해야하는 국적 해운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성원도 남달랐다. 사실상 국민들의 혈세로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의 특성상 국민들의 후원을 받아왔던 셈이다. 승승장구하던 두 기업에 지난 몇 년 새 큰 변화가 있었다. 한진해운은 조수호 전 회장이 사망하자 부인이 회장직을 승계했다. 한진해운이 위기를 맞게 된 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포함해 대외적 환경이 지적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책임은 경영진에 있다. 특히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업운영 경험이 없는 회장의 부인이 초대형 물류기업인 한진해운의 선장이 되었다는 점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관련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 경영인이 와서 회사를 경영해도 힘든 판국에 고인이 된 회장의 배우자가 능력 검증 없이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빅데이터 소셜 인사이트 메트릭스를 통해 8월 25일부터 9월 25일까지 ‘한진해운’을 키워드로 검색해본 결과, 인물과 관련해서는 ‘최은영’이 5,781건으로 가장 많았다. 탐색어 여론에서는 ‘뻔뻔한’, ‘교활한’, ‘가식적’이라는 부정적인 표현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청문회에서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대주주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적지 않은 분노를 느꼈으리라. 자신의 기업이 몰락 직전의 위기에 허덕대는데도 불구하고 임대 수입을 챙기고 회사 바로 옆에 음식타운을 열었다는 사실엔 귀를 의심하기조차 하게 된다. 지금도 하역을 하지 못해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는 한진가족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 기업의 경영에 남녀 구분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정상적인 승계로 전문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 탓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정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경영 능력이 전무한 배우자의 회장 등극은 재벌의 전횡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절대불면의 진리로 경영 능력이 없다면 경영하지 말아야 한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삼면이 바라도 둘러싸여 있고 중세를 비롯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약간 다혈질적인 국민성마저 우리 국민들과 많이 닮아있다. 이런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지난 6월 정치적인 대변화가 있었다. 로마 역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이 탄생한 일이다. 남성이냐 여성이냐의 차이를 떠나 기성정당의 아성이었던 로마에서 신생정당에 가까운 오성운동정당 소속의 비르지니아 라지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녀가 소속된 오성운동정당은 이탈리아 정치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일반적인 정치 담론이 아닌 쓰레기문제 해결, 대중 교통 시스템 개선 등의 생활 밀착형 공약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라지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변화를 향한 단합된 의지로 새로운 로마를 만들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로마시민들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시장에게 기대와 성원을 열렬히 보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취임 100일을 앞두고 로마는 정치적 혼란에 휩싸여 있다.
 
부패와 청렴의 상징 정당인 오성운동 출신인 라지 시장은 조직간 알력을 겪고 공직에도 부적합한 인사 5명을 채용했다가 홍역을 치루고 있다. 인사가 만사인데 제대로 검증을 하지 못한 책임은 시정 준비가 되지 않은 라지 시장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게다가 자신이 임명한 환경국장이 직권 남용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시장은 모르쇠로 일관하다 격양된 시민들의 분노에 직면해있다. 이탈리아 국민들의 58%가 찬성하는 2024년 올림픽 유치를 충분한 소통 과정 없이 반대 기자회견을 하는 바람에 2500년 로마 역사 최초의 여성 시장 라지는 피할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서있다. 라지 시장의 정치 열망은 이해하나 애당초 통치 능력이 없었다면 선거에 나서지 말아야 했다. 그랬다면 한 사람의 아쉬움으로 끝났겠지만 그릇된 판단이 모든 사람을 고통으로 몰아가고 있다. 경영자도 정치인도 경영 능력과 통치 능력이 없다면 나서지도 말아야하고 빨리 물러나야 한다. 모두를 위해.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대표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