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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덕혜옹주', 기구한 삶을 산 여인 통해 전하는 뼈아픈 역사
2016-07-28 15:31:31 2016-07-28 15:31:31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고종이 환갑의 나이에 얻은 덕혜옹주의 삶은 그야말로 기구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의 행보 하나 하나가 기사에 오를 정도로 당시 조선인에게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이를 견제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일본으로 보냈고, 그 이후부터 1962년까지 일본에서 감금되다시피 한 채 살아갔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생이별했을 뿐만 아니라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조국 땅을 밟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훗날에는 정신병까지 걸렸다. 독립운동가가 돼 나라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저항할 힘도 없었다. 나약한 여인이었던 그는 제국주의의 피해자 중 하나다.
 
영화 '덕혜옹주'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허진호 감독의 신작 '덕혜옹주'는 인간 이덕혜의 일대기를 조명한다. 초조하고 불안했던 젊은 시절, 이후 정신병에 걸린 채 한국에 돌아오기까지의 60여년의 삶을 보여준다. 무력으로 무장한 일본 제국주의에 모든 걸 빼앗기고 살아간 한 여인의 삶을 통해 당시의 시대가 얼마나 뼈아픈 역사인지를 알린다. 세련미나 빠른 속도감 대신 '느림의 미학'으로 강렬한 울림을 안긴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2~3명 되는 출연진만으로 깊은 사랑을 그려왔던 허 감독의 블록버스터라는 점은 뚜껑을 열기 전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다. 결과적으로 '덕혜옹주'는 허 감독의 이름값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보인다.
 
감정을 담은 카메라는 인물의 심리를 정확히 드러내며, 일부 장면은 감각적이다. 특히 어머니가 임종했다는 사실을 안 덕혜가 흐느끼는 부분을 뒷모습으로 잡아나가는 장면은 허 감독만의 예술적 감각으로 다가온다. 이 외에도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는 허 감독만의 특기가 여럿 보인다. 장면은 천천히 흐르지만 전반적인 구성은 빠르게 넘어가는 대목은 영리해 보인다. 필요 없는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
 
타이틀롤인 손예진은 자신을 뛰어넘는 연기로 관객과 만날 전망이다. 2시간 7분 동안 덕혜옹주 그 자체로 열연한다. 왕조라는 상징성 때문에 더 많이 감시받고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부터, 인간 이덕혜의 나약함과 조국으로 돌아오는데 실패하고 보이는 광기, 정신병에 걸렸을 때의 흐린 눈빛 등 역대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손예진이 아닌 덕혜옹주를 상상하기 힘들다.
 
김장한 역의 박해일 역시 안정적이다. 김장한의 시선을 통해 덕혜를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박해일은 진행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일본군 장교, 독립군, 신문 기자까지 다양한 직업을 거치지만 흐트러짐은 없다. 윤제문은 '부산행' 김의성과 함께 올해 최고의 악역으로 떠오를만 하며, 라미란과 정상훈은 무겁기만 한 이 영화에 유머를 뿌려주는 숨통 같은 존재다. 특히 라미란이 후반부에 주는 울림에 눈시울이 붉힐 관객이 적지 않아 보인다.
 
비록 허구가 있다고 하지만 덕혜옹주의 심정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제작진의 노력이 드러난다. '암살', '동주'와 같은 맥락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았다. 후반부 신파로 빠질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담백하게 그린 점 역시 장점이다. 개봉은 83, 상영시간은 127분이다.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플러스(+) 별점 포인트
 
▲ 올해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을 독차지할 것 같은 '덕혜 그 자체'인 손예진의 연기 : ★★★★★
▲ 덕혜옹주를 통해 전하는, 뼈아픈 역사적 메시지 : ★★★★
▲ 허진호 감독의 특출난 연출 감각과 버무려진 템포 있는 구성 : ★★★★
▲ 역사를 정확히 바라보고자 했던 제작진의 고민 : ★★★★
▲ 용인하기 힘든 개인적 사고가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윤제문의 연기력 : ★★★★
▲ 말이 필요없는 박해일 : ★★★
▲ 예상 밖 애드리브로 숨통을 튄 라미란과 정상훈 : ★★★
▲ 라미란으로 인해 야기되는 하이라이트에서의 오열 : ★★
▲ 허진호 특유의 '느림의 미학' : ★★
▲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는 박해일의 회심의 대사 : ★★
▲ 시대극에서 보고 싶은 고수 : ★
 
◇마이너스(-) 별점 포인트
 
▲ 마지막 한 방에 대한 아쉬움 : ☆☆
▲ 덕혜 연설 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부르는 '아리랑'의 신파 : ☆☆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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