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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망징패조(亡徵敗兆)
2016-07-28 06:00:00 2016-07-28 09:02:06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나라가 어지럽다. 정말로 어지럽다. 누구 말처럼 국론이 분열되어서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독선과 아집이 국론을 규정짓는 나라. 간신과 권신만 즐비할 뿐 제대로 된 공직자가 사라진 나라, 탐욕과 이익 앞에 염치와 양심이 무너진 나라가 되었다. 어디 그 뿐일까.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갈 길을 못 찾고 헤매는 지도자는 안보와 미래마저 갉아먹고 있다.
 
색색깔 한복은 현란한데 다양하고 치밀한 전략은 없다. 조국과 결혼한 홀몸으로 해외순방은 잦은데 뚜렷이 해결된 현안은 없다. 아베가 날뛰고 트럼프가 협박하는데 시진핑과 푸틴마저 두고 보자며 을러댄다. 좀 있으면 저절로 무너진다던 김정은은 미사일을 쏘아대며 중국과 포옹하고, 공짜 치킨과 맥주를 먹이면 거액의 쇼핑으로 보답할 거라던 유커는 송영선의 한 마디로 거지떼가 되었다.
 
과거 급제의 미몽에 빠져 수신(修身)을 도외시한 철없는 ‘영감님’들이 욕심과 요설로 몰락하는 동안, 99%의 국민들은 졸지에 개돼지가 되었다. 정의구현에 여념이 없다는 대한민국 검사는, 세금 내려고 남편의 피땀이 어린 빌딩을 팔아야만 하는 장모의 통절한 눈물을 위로하느라 여러 시간 동안 막중한 자리를 비워야만 했다. 물론 계약서도 모르고 매수인도 몰랐다. 그저 인간의 도리를 했다는 사람에게 그토록 매몰차게 이빨을 드러내는 자칭 일등신문의 모습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고사만으로 설명되지 않기에 뒷맛이 더 씁쓸하다.
 
어디 그 뿐인가. 실력자의 처제는 1%의 삶을 만끽하느라 새로운 조국 세인트 키츠 네비스를 대한민국에 널리 알리고, 훈련소에서부터 알아주던 “청와대 아들”은 꽃보직에 꿀휴가로 단박에 상관을 승진시키는 미덕을 발휘했다. 수백억의 재산을 지닌 잘 나가던 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하고도 단 한 대의 자가용이 없었다는 검소함은 아파트에 등록된 차가 모두 다섯 대라는 신비로 개돼지들을 경탄케 했다. 하물며 아드님은 그 중 한 대인 포르쉐를 몰던 실력이니 경찰 간부 관용차 운전쯤이야 정녕 탁월하고도 남았으리라.
 
자나 깨나 박씨 가문을 사랑하고 성원하던 성주 군민은 졸지에 폭도가 되어, 어린 아이들을 태운 채 지엄한 총리의 차를 후진으로 들이받는 불한당으로 몰리고, 성주로 시집 온지 수십년 된 며느리는 미처 잊지 못한 전라도 사투리 덕분에 외부세력이 되었다. 그래도 어르신은 복날 무더위에 “개돼지는 타협이 없다”며 장례식을 거행하고, 대안을 달라는 대통령에게 탄핵을 제시한다.
 
이렇게 미국 무기로 대륙이 시끄러운 와중에, 여전히 생사가 불분명한 당대의 부자도 빠질 수 없었다. 부상한 몸으로도 사랑을 실천하고 손녀뻘의 처자들에게 “수고 했다”며 넉넉한 씀씀이를 과시했지만, 충성스러운 공영방송에 의해 몰카의 피해자로 전락한다. 막무가내로 보도지침을 남발하는 언론모리배를 접하며, 지역감정의 괴수들을 찾아내고도 도청범으로 몰렸던 20년 전의 어떤 재벌이 떠오르는 건 또 왜일까.
 
정부시책에 반대하면 언제든 종북이 되는 나라에서, 비뚤어진 세상에 절망한 젊은이들은 ‘한남충’과 ‘김치녀’로 갈려 싸운다. 재벌의 성생활은 인권과 윤리의 영역에서 맴도는데 연예인들의 하룻밤은 요상한 추측과 질타로 도배된다. 공직자의 무능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아이돌의 무지는 절대 불용이다.
 
결국 우리에게 동정과 공감은 스러지고 혐오와 배척만 자라난다. 그래도 대통령은 응답이 없다. 반성도 없고 사죄도 없다. 그러니 그의 총신(寵臣)은 신문지로 책상을 치며 앞길을 방해하는 언론을 질타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목에만 두른 줄 알았던 깁스는 전신을 감싸는 갑옷으로 진화한 것일까. 불안한 권력엔 아집만 남았다.
 
그 와중에 전 재산 29만원짜리 대통령의 아들은 하루 일당 400만원에 1천일 가까이 교도소를 청소하는 사람이 되었고, 주어가 없다던 대통령의 동업자는 형기를 마치고도 일당 2천만원짜리 노역을 1년 반 남짓 더 해야 한다. 과연 이들에게 권력이란 무엇이고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저 불쌍한 건 여전히 이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할 개돼지들뿐이다. 아버지를 잘 만나 대통령이 되고, 친구를 잘 만나 검사장이 되며, 처가를 잘 만나 민정수석이 된 이들을 그저 부러워하는 것만이 개돼지들의 도리가 되어야 할까. *망징패조(亡徵敗兆) : 망하거나 패할 징조를 이 르는 말로, 줄여서 망조(亡兆)로 많이 쓴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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