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사고에 대한 과실이 없을 경우 의료진에 대한 책임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더욱 엄격하게 심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동아대병원에서 양악수술을 받은 직후 호흡정지 등으로 식물인간이 된 이모(30·여)씨와 가족들이 동아대병원을 운영하는 동아학숙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의료진의 책임을 3분의 2로 제한한 원심을 깨고,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코기관 튜브 막힘으로 이산화탄소 혼수에 의한 호흡정지가 발생한 것이라면 의료진이 응급처치한 약물투여는 결국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며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수술후 예상되는 후유증과 위험성, 위험의 회피 방법, 이에 따른 의료진의 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면밀히 살핀 다음 의료진의 책임비율을 제한해야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에게 손해의 발생이나 확대에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사건에서는 의료행위의 특성상 수반되는 불가피한 위험 등을 이유로 의료진의 책임을 제한하려면 책임을 제한할 수 있는 사정이 있었는지 충분히 심리해야 한다"며 "원심이 판시한 통상 의료과오사건에서 행해지는 책임제한 비율이라는 것은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의료사고가 발생한 이후 그로 인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행위는 손해전보의 일환에 불과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지급하지 않은 치료비를 의료진이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에서 제해서는 안 된다"며 "이와는 달리 미지급 치료비를 손해배상액에서 제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미국 영주권자인 점에 비춰 원심의 손해배상액 환산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손해배상액을 우리나라 통화로 환산할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의 외국환 시세를 우리나라 통화로 환산하는 기준시로 삼아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이 변론종결시에 환산한 외국환시세를 그대로 유지한 원심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미국 영주권자로, 대학에서 방사선을 전공하고 있던 이씨는 24세 되던 2010년 12월 귀국해 동아대병원에서 양악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이 끝난지 몇시간 후부터 호흡곤란과 수면장애과 왔고 급기야 호흡부전(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불균형 상태)까지 발생했다.
의료진은 응급처치로 약물을 투여했으나 반응이 없자 수동식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유도하다가 증세가 더 악화되자 코기관 튜브를 제거하고 경구기관을 삽입한 뒤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씨는 호흡정지와 심정지가 왔고 결국 이것이 원인에 돼서 식물인간 상태가 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에 이씨와 가족 등 4명이 동아학사를 상대로 총 18억36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면서, 다만 이씨가 호소하는 증상의 주된 원인을 쉽게 찾기 어려웠고,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방법으로 기도확보와 호흡유지에 노력한 점 등을 인정해 의료진의 책임을 80%로 제한하고 총 11억9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씨에게는 11억여원이 인정됐다.
그러나 2심은 "의료행위 특성상 수반되는 불가피한 위험 등 공평의 원칙과 통상 의료과오사건상 책임제한비율 등을 고려할 때, 1심이 정한 책임비율 80%는 다소 과하다"며 책임비율을 3분의 2로 감경하고 미지급 병원비도 제외해야 한다고 판단, 항소를 포기한 이씨의 남동생에 대한 500만원 부분을 제하고 이씨와 그의 부모에게 총 10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이 인정한 이씨에 대한 손해배상액은 9억7000여만원이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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