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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아이들 통해 보는 우리 사회의 병든 모습
2016-06-21 15:13:05 2016-06-21 15:13:0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헐리우드 영화부터 '곡성'과 '아가씨'까지 초여름부터 극장가 순위 다툼이 치열하다. 관객 입장에서야 볼거리 풍성한 올 여름이지만 되려 그래서 아쉬움을 삼켜야 하는 쪽도 있다. 대작 영화들의 홍수 속 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은 영화 '우리들' 얘기다. 
 
영화 '우리들'의 누적관객수는 20일 기준으로 8338명을 기록했다.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긴 했지만 최근 대작 영화들의 백만 단위 관객수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스크린수는 76개, 총상영횟수는 664회에 불과하다.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정글북'과 비교하면 상황을 좀더 이해하기 쉽다. '정글북'의 경우 스크린수 925개에 총상영횟수는 3만5781회에 달한다. 점유율 27.4% 대 1% 미만이다.
 
현재 영화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것은 평단의 호평과 관객의 입소문이다.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아이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로, 11살 여자아이들 사이의 우정과 질투, 갈등 등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런데 이 소소한 이야기가 어른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영화 속 아이들의 이야기가 다름 아닌 '우리들' 이야기여서다.
 
영화의 주인공은 선이와 지아다. 선이는 힘들게 일하는 맞벌이 부모를 도와 어린 동생을 돌보는 속 깊은 아이이지만 반 아이들은 그런 선이를 자신들의 세계에서 배제하고 따돌린다. 그러던 중 선이는 우연히 방학식 날 전학온 지아를 보게 되고 둘이 여름방학 동안 신나게 놀며 단짝이 된다. 하지만 개학과 동시에 둘 사이는 이내 어색해진다. 부잣집 딸이지만 부모님의 이혼과 전 학교에서의 따돌림으로 이미 마음 고생을 했던 지아가 현재 '왕따'인 선이와 거리를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순수해야 할 아이들의 세계가 왜곡되고 변질되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마치 빈부 격차와 이혼가정에 대한 편견, 편가르기 문화 등에서 비롯된 사회병리현상들이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파고들었음을 지적하는 듯하다. 어린 친구들 사이 미묘한 관계는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은 성인들의 인간 관계에 곧장 빗대어도 무방할 정도다.
 
특히 영화의 시작과 끝, 피구 장면에서 이같은 모습이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영화 초반에 아이들은 줄세우기를 하며 피구 팀을 짜는데 왕따 선이는 그저 양팀의 숫자를 맞춰야 할 때 마지못해 불러들이는 존재다. 또 말미에는 선이는 물론이고 비밀이 결국 탄로난 지아마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아웃'되고 만다. 이처럼 영화 '우리들'은 비록 간접적인 방식이긴 하나 보는 이로 하여금 누가 어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차별 받고 배제당하고 있는지 떠올려보게 한다. 그리고 극한 갈등을 빚은 후 실낱같은 희망으로나마 찾아오는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영화계에서는 이 영화를 두고 '올 상반기 가장 빛나는 영화'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해외 평도 호의적이다. 한국 개봉 전 올해 2월 베를린 영화제 제너레이션 경쟁과 최우수 장편 데뷔작 등 2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이후 8개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특히 연기가 처음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출연배우들 역량의 최대치를 끌어낸 듯한 감독의 솜씨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그런데 정작 한국 관객 반응이 미미해 아쉬움을 자아낸다. 대작도 좋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화두를 제시하는 섬세한 감수성의 영화 하나쯤은 올 여름 챙겨봐도 좋지 않을까.
 
김나볏 문화체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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