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우리는 얼마나 더 잃어야 하는가
2016-06-20 06:00:00 2016-06-20 09:02:48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잃어버린 10이라고 했다. 지금의 집권세력이 권력을 놓치고 누명을 씌우던 말이었다. 그러나 우린, 그 후의 10년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조국은 민주주의를 잃었고 수많은 생명을 잃었다. 청년은 꿈을 잃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쌓고도 취업의 문은 열리지 않고, 기성세대의 벽은 강고하기만 하다. 공무원은 영혼을 잃었다. 국민에 대한 봉사보다는 위를 향한 충성만이 보신과 앞날을 밝히는 열쇠라는 것을 너무도 당당히 입증해내고 있다. 한은은 독립을 잃었다. 중앙은행은 경제부처의 수하일 뿐, 어떤 역량도 없는 거수기로 추락했다.
 
검찰은 염치를 잃고 경찰은 부끄러움을 잃었다. 권력의 사냥개는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민중의 지팡이는 민중의 몽둥이로 피해자마저 뒤바꾼다. 법원은 양심을 잃고 헌재는 진실을 잃었다. 정의는 침묵하고 거짓은 발호한다. 브로커와 변호사를 탓한들 신뢰는 멀어져만 간다. 사명을 저버린 탓이다. 약자와 소수자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기본적 소명을.
 
학자는 양심을 잃었다. 곡학아세와 지록위마는 도처에서 출몰한다. 어버이는 지혜를 잃었고 엄마는 사랑을 잃었다. 어떤 집단의 수식어로 쓰이며 많은 이들의 탄식과 고통을 자아낸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재벌을 끼고 지원했다는 의혹에도 수사는 더디기만 하다. 어쩌면 연합부대는 정권보위의 막싸움에 가장 적합한 단어일지 모른다.
 
어린이는 놀이를 잃었다. 부동산 임대업자가 장래 희망이 되고, 친구들에겐 아파트 평수를 묻는다. 엄마는 학원을 연결하는 매니저가 되었고, 아빠는 무관심을 미덕으로 삼는다. 어른들의 욕심에 우리말보다 먼저 영어를 배우고, 만나는 사람마다 연봉을 묻는다. 학생은 역사 교과서를 잃었다. 아버지의 제사를 임기 내내 봉헌하는 집요함 속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만들어낼 단 하나의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란다.
 
야당은 결기를 잃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던 이들은 어느덧 의전을 따지고 생존에 연연하는 한량이 되고 말았다. 일기당천의 결기보다 숫자가 부족하단 변명만을 앞세웠다. 지식인은 체면을 잃었다. 자리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공포일까. 권력과 자본에 구애하는 것이 어느덧 삶의 지혜가 되고 말았다. 과학자는 진리를 잃었다. 금강산댐의 치욕에도, 천안함이던 4대강이던 과학적 논쟁과 성찰은 없었다.
 
종교인은 존경을 잃었다. 밀양과 쌍용, 강정마을과 세월호의 아픔 보다는 미국 대사의 상처가 훨씬 크고, 편견에 고통 받는 소수자를 위한 기도 보다 부채춤을 추면서 성조기를 흔드는 게 중요하다. 교회를 세습해야 하니 유신의 추억이 반가웠을까. 아니면 장로 대통령을 무릎 꿇린 역사가 자랑스러운 탓일까. ‘축첩 승려빤스 목사까지 등장했으니 분명히 말세는 말세다. 소수자는 인권을 잃었다. 인간의 형상을 지녔으되 동등한 권리를 누릴 시민이 되지 못한다. 편견을 진리로 설파하는 혐오 앞에, 비명과 곡성만이 난무한다.
 
노동자는 직장을 잃고 농민은 터전을 잃었다. 공익광고라는 이름으로 '쉬운 해고'가 선전되고 청년의 살 길은 부모의 해고로 마련된다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소비자는 보호를 잃었다. 아기를 지키려 마련한 살균제가 목숨을 앗아간 흉기가 되었는데도 하소연을 듣는 국가는 없었다. 그럼에도 재벌은 한계를 잃었다. 어떤 정의도 그들의 돈 앞에선 빛을 잃었다. 마을 슈퍼와 골목 식당, 동네 빵집까지 앗아가는 문어발의 탐욕은 그칠 줄 모른다. 금수저 흙수저의 현실 앞에 서민은 희망을 잃었다. 불황은 일상이 되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은 사라진지 오래다.
 
공군은 활주로를 잃었다. 마천루는 하늘을 찌르고 조종사의 목숨을 위협한다. 해군은 헬기를 잃고, 육군은 전차를 잃었다. 전쟁은 그들의 사명이 아닌, 핑계로 내세우는 단어가 되었다. 그들에게 안보는 또 다른 먹잇감일까, 애꿎은 시민만 안보를 잃었다. 남북은 다시 평화를 잃었다. 통일의 서광은 어둠에 갇히고, 개성공단은 화풀이감이나 노리개로 전락했다. 최고존엄은 아버지를 지나 자식에게 이어지고 화해와 협력은 욕설로 치환된다. 할머니들은 배상을 잃고, 학생들은 소녀상을 지키려는데 아베의 욱일기는 대륙으로 가는 길을 열어내고 있다.
 
그리고 우린, 가장 낮고 깊은 곳에서 가장 뜨겁게 울었던 진짜 사람 김관홍을 잃었다. 이렇게 잃고도 얼마나 더 잃어야 10년이 끝날까. 다시 얼마나 많은 세월이 아파야 그 10년을 극복할 수 있을까.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