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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19살 청년의 죽음에 사법부는 자유로운가?
2016-06-13 06:00:00 2016-06-13 10:21:03

 

오영중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이번 구의역 스크린도어 작업노동자 사망 앞에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주체는 어쩌면 사법부일지 모른다. 그 동안 산업현장에서 수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했지만, 그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 결과는 무혐의 내지 벌금형이 대부분이었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참사, 세월호 참사의 경우는 그 피해규모나 국민적 분노가 워낙 큰 대형사건이라 조금은 예외였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에 관한 검찰의 수사와 법원 판결의 근본적인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2013년 성수역 스크린도어 사고는 무혐의로 종결되었고, 2015년 강남역 사고는 사고발생일로부터 약 10개월간 수사를 지연하다가 이번 구의역 사고 직후 활발히 수사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고 당시 CCTV분석을 하는 데 왜 10개월이 걸린 것일까?

 

 

그동안 검찰은 사람이 죽어도 그 원인을 말없는 망인의 과실로 정리하여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하면서,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사망원인 규명을 애써 외면해왔다. 설령 사업주의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고작 벌금 몇백만원이 전부였다. 대부분 과실범이기에 형량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법리다. 성수대교 붕괴참사에서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라는 법리를 대법원이 개발했을 정도이다.

 

법원은 사망사건에서 죽은 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슬픔의 가격을 내부문건으로 정해 재판을 운영했다. 그격은 상당기간 동안 5000만원이 한도였다가 최근 8000만원으로 올렸다는 소문 정도가 돌고 있을 뿐이다. 일반 국민은 아무도 그 기준을 모른다. 노동자와 국민의 생명은 그렇게 비용 내지 가격표로만 평가되어왔다. 많은 시민단체와 국민들이 산업현장에서의 안타까운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고쳐달라고 요청했던 것이 어디 한 두 해 되었던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어린이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사망했지만,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수사에 반영되기까지는 약 5년 이상이 걸렸다.

 

작년 어느 학술대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10)를 도입하자고 발표했더니. 며칠 뒤 판사출신 어느 로스쿨 교수가 주최 측 신문사에 정면으로 반박기고문을 올렸다. 기고문은 '우리민사법제는 미국과 달리 실제 발생한 손해만 배상하는 구조이며, 민사법을 잘 모르는 시민단체 등에서 함부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주장하지 말라'는 훈계를 담았다. 그분은 우리나라의 인권을 책임지는 국가인권위원이기도 했다. 그 분의 법리 속에는 오직 민사법체계만 존재하고 사람은 없는 듯했다. 민사법체계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법은 사람, 그리고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현장 사망자가 연평균 약 1500~2000명에 이르고, 최근 10년 동안 전혀 줄지 않고 있다.여기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를 감안하면, 산업현장에서 매일 벌어지는 희생자의 수는 훨씬 클 것이다. 산업현장은 이익과 비용을 최우선적으로 계산하는 곳이다. 사업주에게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비용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법 위반을 통해 얻는 기대이익이 그 위반으로 인해 받을 불이익보다 훨씬 크다면, 법을 지킬 이유가 없어진다. 단순한 산수와 계산만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런 '계산의 법칙'을 지닌 사업주가 있는 한 산업현장의 죽음과 슬픔은 반복된다. 그리고 지하철·철도·배 위에서의 국민의 안전도 위협받는다.

 

이러한 이익과 비용의 방정식, 그리고 목숨 값 계산법을 가르쳐준 곳이 바로 사법부다. 검찰과 법원은 사람의 목숨 값, 그리고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에 대한 처벌과 배상 수준에 관해 지속적으로 시그널을 주고 있었다. ‘산업현장에서 구조적인 문제로 노동자가 사망해도 망인의 과실로, 혹은 책임자에게 고작 벌금 몇백만원이 전부다라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낸 곳이 바로 사법부다. 검찰과 법원이 한 몸이 되어 매일 5명 이상 죽어나가는 산업현장, 그리고 생활 곳곳에서의 안전사고 희생을 외면해왔다. 이 길고도 긴 침묵의 사법카르텔이 언제쯤 바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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