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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조성희 감독 "이념이 도덕 위에 있을 때의 위험을 말하고 싶었다"
2016-05-01 11:08:15 2016-05-01 11:08:15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조성희 감독은 지난 2012'늑대소년'을 통해 혜성처럼 충무로에 입성했다. 한국전쟁 이후 전쟁 병기로 쓰기 위해 만들어진 늑대소년(송중기 분)과 폐렴을 앓고 있는 소녀(박보영 분)의 판타지 멜로는 66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조 감독은 강원도 영월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로 그려낸 점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신선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어린 소녀와 소년의 첫사랑에서 드러난 멜로 감성도 훌륭했다. 충무로의 실력파 신예로 자리잡은 조 감독이 이번에는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을 들고 나왔다.

 

판타지 멜로로 첫 선을 보였던 그가 새롭게 택한 장르는 헐리우드 서부극 스타일의 탐정물이다. 스릴러와 유머를 섞었으며, 특유의 색감을 토대로 하드보일드 영화로 만들었다. 어두운 반 영웅 캐릭터도 탄생시켰다.

 

오는 54일 신작 '탐정 홍길동'을 통해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조 감독을 지난 29일 삼청동 커피숍에서 미리 만나봤다. 그는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면서 "'탐정 홍길동'이 꼭 시즌제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성희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다음은 일문일답.

 

-전작인 '늑대소년''탐정 홍길동'에 공통점이 있다.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는 점이다어떤 면에서는 만화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미장센이다. 이런 배경을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화의 스토리나 캐릭터가 실제 있음직한 이야기도 아니고, 허황된 면도 많다. 이야기 자체가 사실적이지 않아, 표현 방식도 사실적이지 않은 방식을 택했다. 사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사실적이지 않게 표현해야 비로소 믿음직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했다.

 

-가공된 색감을 유독 좋아하는 성향인가.

 

비록 연출자인 나의 취향이 아직까지는 사진보다 그림이나 가공된 연출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소신이나 원칙을 갖고 이러한 배경을 갖춘 건 아니다. 이야기에 맞는 표현방식을 찾다가 이런 결과를 내놓은 거다.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색깔이 뚜렷하지 않은 이미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전작에서 판타지 멜로로 크게 성공을 거뒀는데, 이번에는 장르가 다르다. '탐정 홍길동'은 어떻게 출발하게 됐나.

 

캐릭터가 전면에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캐릭터가 가장 큰 무기인 영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꿈꿔왔다.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 것인지 고민했고, 새로운 캐릭터가 아닌, 있는 것에 변형된 캐릭터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그러다 찾은 게 홍길동이다. 홍길동의 몇 가지 요소에 흥미를 느꼈고, 홍길동전에 나오는 캐릭터가 아니라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게 된 거다.

 

-아닌게 아니라 여러 신선한 대목이 있지만 가장 특이한 건 홍길동 캐릭터다. 기본적으로 성품이 못됐고, 잔인하고, 교활하다. '똑똑한 쓰레기'같은 인물이다.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정의로운 면은 없다. 대의도 없다. 기존의 틀을 완전히 무시한 캐릭터라는 게 흥미롭다.

 

홍길동은 멋있게 보일 수 없는 요소를 정말 많이 갖고 있다. 싸움도 못한다. 아이들에게 사납게 대할 뿐 아니라 8살짜리 애한테 '오래 살고 싶으면 입 조심해라'라는 말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심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출발했다. 근사하고 멋있지 않은 그를 호감가고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게 숙제였다.

 

'탐정 홍길동'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숙제를 잘 풀어낸 것 같은가. 홍길동 캐릭터에 대해 어떤 반응이 있나.

 

이제훈을 만난 게 정말 다행인 거 같다. 홍길동을 자기 나름대로 창조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새롭고 신선한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 같다. 반면에 주위의 반응은 많이 갈린다. 잔인하고 교활한 점 같은 인격적 결함을 더 세게 갔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미 너무 심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더 악랄했다면 어땠을까 한다. 그런데 중반부터 의외로 착한 느낌의 사람이 된다. 좀 갑작스럽게 선의를 찾은 듯한 느낌인데. 원수를 만나서 용서를 해주려 하는 부분은 사실 좀처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그 부분은 내가 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홍길동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이들에게 '너희 나 믿지?'라고 물어보는데, 애들이 냉큼 '믿는다'고 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홍길동에게 정의나 선의가 생긴다고 바라봤다.

 

홍길동은 과거의 아픔을 지닌, 비극적이고 암울한 인물이다. 아이들은 앞으로 다음 세대를 책임질 사람들이다. 홍길동은 과거와 미래의 중간에 있다. 복수의 고리를 끊어내면서, 아이들이 자기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길 바랐던 것 같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용서'라고 생각한다.

 

-홍길동의 이제훈을 어떻게 평가하고 싶나.

 

이제훈은 우물이 깊은 배우다. 일견 보이는 이미지보다 많은 것을 끌어 올리는 배우다. 매번 촬영장에 갈 때마다 기대가 됐다. 홍길동은 속으로 사람들을 비웃고. 자칫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 역할인데 이걸 어떻게 매력 있게 만들어줄지 기대가 컸다. 결과는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배우 고아라는 잘했다 혹은 못했다를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분량이 적다. 어떻게 그를 설득했나.

 

처음에는 우정출연이었다. 고아라가 연기한 황 회장은 사건에 깊숙히 개입하기보다는 길동과 유일하게 소통하고 그를 지원하는 인물이다. 길동이 악의 소굴에서 태어났지만, 선의 입장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돕는 인물이다. 고아라도 분량이 적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흔쾌히 출연했다. 분량은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배우가) 애초에 원하지도 않았다. 개인보다 작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였기 때문에 캐스팅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늑대소년''탐정 홍길동'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주제의식을 전면에 드러내는 대신 주변 어딘가에 둔다는 점이다. '늑대소년'은 멜로가 메인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전쟁을 또 이기고자 하는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광기를 꼬집는다면 이번 영화는 사적복수가 메인이고, 권력을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잡고자 하는 이들의 광기는 그 이면에서 드러난다. 주제의식을 눈앞에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렇게 해석해준다면 감사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히 대중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모티브로 삼지는 않았다.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아리송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해석도 나온 것 같다.

 

-종교집단인 광은회의 실체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통해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광은회는 안보 사건을 일으켜서 공안 정국을 만들어 정권을 잡겠다는 조직이다. 어찌 보면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등장한 뻔한 악이다. 굉장히 과장된 면도 있다. 이들을 포악한 자본가나 부패한 권력자가 아닌 종교집단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다. 정상 범주 외의 광기가 서린 집단의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인해질 수 있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탐정 홍길동'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김성균이 연기한 강성일을 통해 그러한 속내를 내비치고 싶었던 건가.

 

내가 생각한 주제의식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의도는 있었다. 강성일로 대표되는 악당은 자기가 믿는 것이 최상의 가치이다. 그 외에는 버려도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목표와 신념을 위해서는 폭력도 정당화되며, 사람도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게 세상을 구하는 길이라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념이 도덕 위에 있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하고 싶었다.

 

-말순 역의 김하나 양을 잊을 수가 없다. 연기 경험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디렉션의 승리라고 보아야 하지 않나. 어떻게 캐스팅했는지.

 

처음보자마자 느낀 건 '안 되겠구나'였다. 연기를 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고, 심지어 부모님도 꼭 출연시키고자 하지 않았다.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근데 계속 아른 거리더라. 사랑의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계속 생각났다. 더 뛰어난 연기력의 사랑스런 아이들도 많이 만났는데, 하나 양만 생각났다. 그래서 시간을 들이고 꾸준히 대화를 하면서 마음을 열게 했다. 연기할 때 공들이는 것은 물론 편집할 때도 공을 많이 들였다. 본인도 정말 잘해줬다. 연출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잘한다고 느꼈다면, 본인이 정말 잘 한 거다.

 

-말순 캐릭터가 굉장히 좋았는데, ·후반부부터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가 심각해져 갈 때쯤 말순의 유머를 가미해 분위기를 풀었다면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사실 후반부 장면은 어린 말순이가 감당하기에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 많다. 유머를 넣으려면 그 장면을 눈 뜨고 목격해야 하는데, 그러면 말순이 정신적으로 망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랬다면 홍길동도 자체 기능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조금 지루하더라도 말순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난해부터 시즌2를 염두에 둔 작품이 여럿 나왔다. 그 중에서 가장 깔끔하고 기대감을 높이는 엔딩을 구사했다고 생각되는데. 만약 흥행에 성공해서 시즌2를 찍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나.

 

개봉 전이라서 이른 감이 있다. 길동은 이번 시즌을 통해 소명을 깨닫는다. 마지막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악에서 태어났지만 선을 위해 싸워야한다는 걸 알았다. 적은 아버지가 될 테다. 그리고 고전에서 홍길동은 삼형제다. 길동은 서자고 둘째가 홍일동, 첫째가 홍기동이다. 강성일도 가명이었다. 악의 근원을 찾아서 깊숙하게 파고드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시즌2을 꼭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줬으면 한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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