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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다시 권리장전을 말하다
2016-04-28 17:04:52 2016-04-28 18:00:48
"우리는 안다. 우리가 누려왔던 권리들은 앞서 누군가의 치열한 싸움 끝에 이어져 온 것이란 사실을. 다시 이 싸움을 잇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더 끔찍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란 진실을."
 
지난 25일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는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라는 프로젝트의 킥오프파티가 열렸다.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는 연극, 영화, 미술을 막론하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검열사태에 항의하는 의미로 연극인들이 주최하는 행사다. 이 자리에서 예술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권력에 대항해 시민과 예술가들의 권리를 되찾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본래 권리장전은 영국의 명예혁명의 결과로 이뤄진 1689년 12월의 인권선언을 뜻한다. 오늘날 권리장전이라는 말은 각국의 헌법 속 인권을 보장하는 규정을 폭넓게 지칭하기도 한다. 이번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 프로젝트에서 이미 보장되고 있다고 믿었던 권리장전이 다시 한 번 언급됐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현재 권력이 시민과 예술가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술에 대한 권력의 검열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정부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 특정 연극인을 지원에서 배제하고,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특정 공연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면서 검열 파문이 일었다. 최근 류재준 현대음악 작곡가의 서울국제음악제 지원 탈락,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부산시의 개입 등도 이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의 코드에 맞춰 이런 저런 모습으로 예술 관련 제도가 변화되어 온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2000년대 이후 지금처럼 특정인, 특정축제를 겨냥해 직접적으로 제재에 나선 일은 보기 드물었다. 
 
특히 기초예술 분야에서 지원금을 무기 삼아 검열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그 중심에는 문예진흥기금을 운영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있다. 문예위는 사회에 도발적 질문을 던지는 예술 본연의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배려하기는커녕 도리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들에 대한 직간접적 제재에 나서고 있다.
 
문예위의 예술 검열 이면에 또 한 가지 숨겨진 논리는 바로 시장 만능주의다. 문예위는 예술진흥 정책의 중심에 창작 지원 대신 예술시장 활성화를 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가의 생존 없이 과연 예술 시장의 정상적인 구현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결국 예술시장 활성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자본가의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로 예술계가 도배될 것이 뻔하다. 콘텐츠 산업 활성화에 대한 지향이 도를 넘어서서 기초예술까지 집어삼키려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는 오늘날 예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권력에 반하고 시장 가치에 반할 것이 분명할 '검열각하'는 오는 6월9일부터 5개월간 21개 공연을 올리면서 공연에 필요한 최소비용 4300만원을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www.tumblbug.com/projectforright)으로 모으려 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시민들과 연대해 의미있는 권리장전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나볏 문화체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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