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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거센 북풍'…믿을 것은 선거 뿐인가
2016-02-15 06:00:00 2016-02-15 08:46:24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음력 설도 지났으니 분명한 병신년이다. 세월호의 비탄과 소녀상의 눈물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는데, 선거를 앞둔 대한민국은 입춘이 지났어도 북풍이 거세다. 미사일인지 로켓인지를 놓고 해묵은 종북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당장 배치하기도 어렵다는 사드(THAAD) 이야기가 뉴스를 뒤덮었다. 그저 미국이 만들었다니 아주 좋은 신무기려니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들은 그 필요성과 적절성을 찬찬히 살피는 이들에게 “대체 누구 편이냐”며 삿대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냉정한 정책판단보다는 선거용 호재가 급한 탓인지 집권당 대표나 대변인조차 사드에 대한 기초적 이해와 지식도 없이 북한증오와 미국무기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
 
어디 그뿐인가.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한 대책과 응징이 난데없는 개성공단 폐쇄란다.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이라며 피눈물을 흘리는 기업인의 호소에도, 퍼주는 게 아니라 퍼오는 거라는 전문가의 설명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 정권의 명운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폭주를 견제해야 할 여당 의원들은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충실한 거수기나 시끄러운 야바위꾼으로 전락하고, 권력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언론은 팩트 체크에 관심이 없다. 학자 출신의 전문가라는 장관조차 “개성공단 임금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자금으로 사용된 관련 자료가 있다”면서 블러핑(bluffing)을 선도한다. 이러니 “통일부 장관은 아무나 해도 되는 자리”라던 류길재 전 장관의 퇴임의 변에 담긴 뜻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10년간 공들여 쌓아놓은 유·무형의 통일자산은 이렇게 스러졌다. 신뢰는 금이 갔고 불신과 증오만이 팽배하다. 일본은 아베의 술수로 외교적 이득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미국은 일본을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는 것에 더해,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챙기며 우리까지 앞장세우는데 성공했다. 갖은 호의를 베풀고도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된 중국이 반발하는 것이야 당연한 수순이니, ‘동북아 균형의 조정자’를 자임하던 나라가 졸지에 ‘동북아 균형의 파괴자’로 전락했다면 지나칠까.
 
북한이 예측 불가능하고 비정상적인 정권이라는 게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 그런 정권을 마주하며 누구보다 노력하고 지혜를 발휘해야 할 주체는 우리 정부라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오늘 북한문제를 둘러싼 국제무대에 우리 정부는 없다. 이명박의 대북정책 ‘비핵·개방·3000’은 아무런 성과도 없는 빈껍데기일 뿐이었고, 박근혜 정권은 북핵 해결을 위한 주도적 노력을 방기한 채 미국과 중국에 문제를 떠맡기려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진행되지 않고, 교류·협력도 안보도 다 불안해지는 역효과만을 낳았다. 누가 뭐래도 북한이 핵 능력을 키우는 온상을 제공한 것은 이토록 남북관계를 관리하지 못한 ‘이명박근혜’ 정권의 무능이다. 북한을 압박할수록 북핵 능력이 고도화되는 딜레마의 수렁에 빠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나 개성공단 폐쇄조치, 미사일 방어기술 도입이 효과적 대응일 수 없다는 것은 그간 정교하게 확립된 핵무기 국제정치학 이론의 기본적 예측이자 결론이라 한다. 위협과 압박의 증가는 핵무장을 강화하려는 욕구만 부풀리고, 방어무기의 도입은 군비경쟁의 심화로 이어져 지역안보는 더 불안해진다는 것이니, 지금 가장 중요한 안보조치는 대화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북한의 미사일과 핵을 동결시키는 일이란 게 정통 이론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이 정부엔 대화의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모르면 배우려 해야 하나 머리가 없다. 어려우면 가르쳐달라 해야 하나 마음이 없다. 비운 걸 채우려면 열려야 하는데 고집불통이다. 그저 믿는 것은 십상시들 뿐인지, 고언과 충언을 감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저 곡학아세와 지록위마만이 혼용무도의 길에 가득하다.
 
혹시 대한수학회 회장을 지낸 최윤식과 서울대 총장까지 올라간 토목공학자 선우중호를 기억하시는가? 전자는 사사오입 개헌이 수학적으로 타당하다는 단초를 제공하였고, 후자는 금강산댐의 위협을 날조한 주역으로 지목되었지만 아무런 단죄 없이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북한문제와 사드를 둘러싼 억지에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여러모로 아프지만 버니 샌더스를 가진 미국을 부러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역설한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사람들의 잘못된 의사결정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과연 우리는 이토록 잘못된 의사결정을 한 자들을 선거로 심판할 수 있을까. 절망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독재와 아첨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을까. 그리하여 병신년은 정녕 그 이름을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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