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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연극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안데르센 극장 방문기
2015-12-02 06:00:00 2015-12-02 06:00:00
"어린이 여러분, 연극이 시작되면 어두워 질거예요. 암전이라는 거예요. 어두워지면 무서워하지 말고 박수를 치면 돼요. 할 수 있겠죠?"
 
부산 기장군에 새로 세워진 안데르센 극장. 그곳을 찾아온 어린이 관객들은 정말로, 어둠이 올 때마다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정말로 부끄럽지만 나는 그 박수소리에 울었다. 연극을 둘러싼 온갖 어둠으로 지쳐있었다. 치솟는 임대료로 사라지는 극장들 때문에 쓸쓸해지고 있었고, 한 다리 건너면 알만한 연극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어서 슬퍼지고 있었고, 받아도 걱정이고 안 받아도 걱정인 '아주 적당한' 지원금 때문에 초라해지고 있었고, 마름을 닮아가는 몇몇 예술 공무원들의 경박한 히스테리(검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때문에 화가 치솟고 있었다.
 
'에이 xx, 연극을 떠날까'라는 생각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연극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분명히 돈을 벌 수 없을 것이고, 분명히 널리 알려지지 않을 것이고, 분명히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다 알고 운명을 걸었다. 딱 한 가지만 지속할 수 있다면 나는 연극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다.
 
'연극의 지속'.
 
내가 내 삶에서 바란 것은 정말로 딱 한 가지였다. 연극만으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이 창작하고, 같이 연습하고, 같이 공연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술을 마시면서 하루하루를 연극과 같이 살아가는 것. 내가 눈을 감기 전까지 그 한 가지만 지속할 수 있다면 나는 내 삶에 만족하면서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걸판을 만들고 10년이 지난 지금, 내 삶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걸판과 함께 10년을 지속하고 있다. 다섯명이었던 단원은 서른명이 되었고 1년에 10회를 안 넘었던 공연 횟수는 이제 1년에 180회를 넘어서고 있다. 분명히 공연을 많이 하는데 나는 공연으로 삶을 지속하는데, 그런데,
 
자꾸만 뭐가 허전했다. 공연은 잘 지속하고 있는데 그런데, 우리는 연극을 잘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대학로에서는 하루에 100편이 넘는 공연이 지속되는데, 전국의 소극장과 공공극장에서도 수많은 공연들이 계속 지속되는데 그런데, 우리의 연극은 잘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공연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하지만 연극인은, 극단은, 극장은, 끊임없이 사라진다. 때로는 검열로 때로는 지원불가로 때로는 임대료로. 그렇게 연극을 이루는 요소들이 하나둘 떠나도 공연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누군가가 떠나면 다른 누군가가 공연을 지속하고 무언가가 떠나면 다른 무언가가 공연을 지속한다.
 
공연은 지속되고 연극은 사라진다. 나는 공연의 지속이 연극의 지속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 야릇한 세상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어서 쓸쓸했다. 때때로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후배들이 나를 바라볼 때도 쓸쓸했고, 내가 다른 선배들을 바라볼 때 그들이 나한테 보내는 쓸쓸한 눈빛 때문에 또다시 쓸쓸했다.
 
이 쓸쓸한 와중에 안데르센 극장을 찾았다. 이곳은 부산 기장군과 연희단거리패가 함께 일궈낸 어린이청소년 전용극장이다. 이곳은 기장역에 내려서 삼십분 넘게 차를 타고 들어가야 모습을 드러낼 정도의 산골에 있다. 이곳에 누가 공연을 보러올까. 이곳에 관객이 있을까. 이 극장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잠시 후, 나는 눈을 의심했다. 이 깊은 산골로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차들의 행렬.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어린이들의 벅찬 숨소리. 지난 주 공연이 너무 좋아서 이번 주에는 아예 학교를 빼고 데려왔다는 아이들의 아버지. 객석은 꽉 차다 못해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어둠이 올 때마다 힘차게 들려오는 어린이들의 박수. 공연이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설 때, 다음 주에 또 오자고 흥분된 감상을 나누는 가족들.
 
너무나 당연한 광경. 연극을 처음 시작한 이유였던, 관객들의 광경. 극단을, 극장을, 나의 극단으로, 나의 극장으로 여기는 자부심 넘치는 관객들의 광경.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광경. 그 광경을 나는 남쪽 끄트머리 산골 극장에서 다시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이 어린이들은 매 주마다 극장을 찾아올 것이다. 이 극장은 자신들의 극장이 될 것이고 이 배우들은 자신들의 배우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연극은 자신들의 연극이 될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연극이 무엇이냐 질문을 던진다. 사실 그 답은 단순할 수도 있다. 연극은 관객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 관객이 어린이일 수도 청소년일 수도 노인일 수도 있고 그 이야기가 사람일 수도 사랑일 수도 사회일 수도 있다. 연극이 무엇이냐는 질문 또한 관객을 만나서 나누는 것이다. 관객을 만나면 연극이 지속된다. 관객이 팬이 되면 극단이 지속된다. 팬이 동반자가 되면 극장이 지속된다.
 
어느 지역에 있는 극장의 일화가 떠오른다. 지원이 끊겨서 극단이 극장에서 철수할 위기에 처하자, 그 지역 학부모들이 관청으로 행진해서 항의농성을 했다는 것. 그리하여 다시 지원이 시작 되었다는 것. 그 학부모들이 관청으로 행진한 이유는 그 극장에 어린이들로 이루어진 어린이 극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학부모들은 어린이극단을 사랑하는 관객들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연극을 어떻게 지속시켜야 할까. 우리가 우리의 연극을 지키자고 외친다면, 우리의 연극을 지키기 위해 달려와 줄 우리의 관객들이 얼마나 존재하고 있을까. 대학로에서 삼십년 넘게 살았지만 연극을 한 편도 안 봤다는 어느 식당 주인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옆집 사는 사람이 연극배우인 것을 최근에 알았다는 어느 술집 아저씨도 떠오른다. 이 할아버지에게 이 아저씨에게 대학로의 연극은 지켜야 할 존재일까.
 
우리는 연극을 극단을 극장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아니, 누구와 지켜야 하는가. 우리 옆집의 이웃은 우리가 연극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의 지속은 우리만의 힘으로 가능한가. 우리는 우리를 지속하는 노력을 넘어 관객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동료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관객의 얼굴을 기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어둠이 왔을 때
우리에게 박수를 쳐 줄 이들이
얼마나 존재하고 있을까.
 
오세혁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 작가, 연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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