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외부 문화의 유입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동시에 문화정책의 방향을 새로운 조건에 맞게 수정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북한 사회·문화 분야의 전문가인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 26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김정은 정권 4년 평가와 남북관계 전망’ 학술회의에서 “북한은 한류를 포함한 자본주의 문화 유입을 사회주의에 반하는 ‘비법적 행위’로 규정하는 법령을 마련하고 있다”면서도 “현실적으로 통제의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문화정책적인 차원에서도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당국의 그같은 대응을 상징하는 것이 ‘북한판 걸그룹’으로 불리는 모란봉악단이라고 이 교수는 소개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에 의해 2012년 창단한 모란봉악단에 대해 이 교수는 ▲젊은 여성들로만 구성돼 있고 ▲상대적으로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일렉트로닉 악기로 편성돼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문화적 흐름과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목할 것은 창단부터 최고지도자가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지난 2014년 6월 김 제1위원장이 “문화예술부문의 지도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모란봉악단의 창조기풍을 따라 배워 예술 창작 창조활동에서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발언한 사실을 소개했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 문화와 자극적 문화의 수용이라고 할 수 있는 모란봉악단이 문화정책의 중심이 되는 것은 외부 문화의 유입이 확대되고 젊은 세대의 문화 취향이 변화하는 현실에서 비롯됐다”며 “주민들에게 사상교양 일변도의 북한의 공식문화는 설득력을 점차 상실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의 경우는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시장에서 남한 문물이 넘쳐나는 것은 남·북한 화해·협력의 소산이기도 하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며 “남·북간에 신뢰가 쌓이고 남한의 문물이 북으로 들어가는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북한 정치체제의 급격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화의 확산과 국가 부분의 약화라는 체제전환은 점차 진전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추세는 뒤로 돌리기 어렵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일상생활이나 일상문화 그리고 주민들의 인식변화가 바로 체제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체제전환을 요구하는 구조적 압력의 정도를 조금씩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김정은 정권에 경제적 안정성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의미에서 북한이 ‘경제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규정했다. 김 제1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인민생활 향상에서 전변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기회만 있으면 인민생활을 언급하는 것은 이같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조 교수는 소개했다.
특히 조 교수는 북한이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핵 병진정책’에 대해 “흔히 이 정책을 1960년대 김일성이 제시한 경제·국방 병진정책의 재판이라고 평가하지만 내용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1960년대) 당시는 한국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추진하던 상황에서 한·미·일 3각 안보체제가 출범하자 (북한이) 국방을 우선순위로 설정한 것으로 말로는 병진이었지만 실은 국방에 방점이 찍혔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경제가 우선으로 경제 건설이 핵 건설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은 4년간 북한경제는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고 제도 개선과 시장의 확대가 성장의 핵심 요인이었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는 물론 주체 이데올로기와도 상충되는 딜레마에 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지난 10월 16일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한 모란봉악단의 노동당 창건 70주년 공연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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