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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추모 속 친정팀과 만나는 즐라탄
2015-11-25 17:52:23 2015-11-25 17:52:23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오늘 내가 덴마크 국가대표팀 전체를 은퇴시켰다."
 
지난 18일(한국시간) 열린 스웨덴과 덴마크의 '유로 2016' 플레이오프 2차전 직후 스웨덴의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34·파리생제르맹)는 이렇게 말했다. 1~2차전에서 특유의 돌려차기와 강력한 프리킥으로 3골을 뽑아낸 그는 평소보다 더욱 기세등등했다. 스웨덴은 즐라탄의 활약 덕분에 유로 2016 본선에 합류했다.
 
즐라탄은 최근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면서도 "어렸을 때 성공하려면 다른 선수보다 10배 이상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걸 이룬 것 같다"고 말하며 자신의 성공가도를 스스로 드러내는 당당함을 내보였다. 그 밖에도 팬들 사이에서 '즐라탄 어록'이란 게 있을 정도로 그는 언제나 자신감에 가득 차있다.
 
유럽 축구 전문 저널리스트인 사이먼 쿠퍼에 따르면 즐라탄은 스웨덴 사람들의 특성과 전혀 다르다. 즐라탄은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신조인 '내가 남보다 나을 게 없다'고 여기는 '얀테의 법칙'을 익히지 않았다. 스웨덴 문화장관을 지낸 레이프 파그로츠키는 사이먼 쿠퍼와 인터뷰에서 "즐라탄이 뛰어난 이유는 자신을 악동으로 만드는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처럼 화끈한 성격의 즐라탄도 이젠 자신의 축구 인생 중 손으로 꼽힐 정도로 의미 깊은 경기에 나서려 한다. 그의 소속팀인 프랑스의 파리생제르맹(PSG)은 오는 26일 새벽 스웨덴의 스웨드뱅크에서 말뫼(스웨덴)와 201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A조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이 경기에서 즐라탄의 엄숙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최근 일어난 '파리 연쇄 테러' 분위기 속에서 PSG의 추모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참사 당시 홈페이지를 흑백으로 만들며 추모 분위기에 합류했던 PSG는 경기를 위해 특별 유니폼을 제작했다. PSG는 'Je suis Paris(나는 파리다)'라는 문구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이날 경기를 포함해 앞으로 2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즐라탄은 파리 연쇄 테러 이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매우 비극적이며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일어나선 안 된다"고 희생자들을 애도한 바 있다.
 
둘째는 그가 겨냥하는 골대가 지금의 축구 인생을 시작한 친정팀의 골문이라는 점이다. 즐라탄은 고향인 스웨덴 말뫼에서의 어려웠던 유년 시절을 자서전을 통해 밝히기도 했을 정도로 고향에 대한 기억이 뚜렷한 선수다.
 
말뫼는 즐라탄을 축구 선수로 만들어준 첫 단추다. 즐라탄은 1999년 말뫼에서 데뷔하며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2부 리그에 있던 말뫼를 1부 리그로 끌어올린 것도 즐라탄이며 2001년 아약스(네덜란드)로 떠나면서 700만 달러(약 80억원)의 이적료를 안긴 팀도 고향 팀 말뫼였다. 이후 유벤투스, 인터밀란, 바르셀로나를 거치는 동안 즐라탄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도약했다.
 
즐라탄은 말뫼를 만나면서 이른바 '즐라탄 더비'를 치른 적이 있다. 지난 9월16일 열린 PSG와 말뫼의 2015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이었다. 당시 그는 경기에 앞서 SNS를 통해 "언젠간 챔피언스리그에서 말뫼 홈 경기장을 밟길 기대했다"며 경기에서 만날 말뫼 선수들의 사진을 올렸다.
 
그래서인지 즐라탄은 제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평소보다 진지하게 경기에 임했다. 그는 결국 PSG의 2-0 승리를 이끄는 추가골을 도왔음에도 고개를 숙이며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평소 같으면 기쁨에 가득 찬 화려한 몸짓이 나왔겠지만 이날 즐라탄은 어떠한 세리머니도 하지 않았다. 다른 팀도 아닌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든 첫 단추가 말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후반 30분 즐라탄이 교체돼 나갈 때 경기장에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
 
다만 파리 연쇄 테러 추모 분위기 속 친정팀을 상대로 경기를 치른다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즐라탄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말뫼전에 대해 "내가 3골을 터뜨려 PSG가 이긴 뒤 모든 사람이 내 이름을 외쳤으면 좋겠다"고 스웨덴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일단 자신감은 여전한 즐라탄 본연의 모습이다. 그가 과연 골을 넣은 이후 세리머니를 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즐라탄 더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사진/PSG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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