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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인문학적 소양은 '지식' 아닌 '능력'
2015-10-30 06:00:00 2015-10-30 06:00:00
최근 몇 년 사이 불기 시작한 인문학 열풍이 가실 줄 모르고 있습니다. 오피니언 리더들, 기업가들에게 꼭 필요한 지식으로 인문학이 재조명되면서 각종 강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이런 트렌드는 한편 씁쓸함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인문학이 마치 '스펙'처럼 다뤄지면서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도록 하는 인문학 본래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책 <왜 일류의 기업들은 인문학에 주목하는가(모기룡 지음, 다산초당 펴냄)>도 얼핏 제목만 보면 그런 인문학 열풍에 힘입어 나온 또 하나의 책으로 오해 받을 만한데요. 그러나 이 책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저자 모기룡은 인문학이 단시간에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문학 열풍에 휩쓸리기 보다는 인문학의 근본적인 힘이 무엇인지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고 설파하는데요. 인문학을 올바로 이해할 때만이 인문학을 실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인문학적 소양은 금방 습득되지 않는다
 
저자 모기룡은 철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고 인지과학 박사과정을 밟았다고 하는데요. 이 책은 다양한 학문들을 접목시켜 인간의 마음과 사고작용을 규명하는 인지과학도의 태도를 고스란히 담아낸 듯한 인상을 줍니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의 실용성이란 다름 아닌 종합적 판단, 도덕성, 융합적인 지식과 사고 같은 것들입니다. 기업에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는 철학이나 역사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이 다섯 가지 능력을 높은 수준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데요.
 
저자가 구체적으로 기업에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제시한 것은 고상함과 하이퀄리티(품격), 도덕성, 인간 중심의 관점(사용자경험), 창의성, 비판적 사고 등입니다. 책에서는 이 다섯 가지 능력에 대해 각각 서술하고 인문학이 이들 능력을 갖추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실제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한 점도 눈길을 끕니다. 가령 고상함과 하이퀄리티에 관한 부분에서는 스티브 잡스를 예로 들며 품격과 감성의 시대를 연 스티브 잡스가 리드 칼리지 철학과 출신이라는 점을 서술합니다. 잡스가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매뉴얼 없이도 이용할 수 있는 직관적인 스마트폰을 개발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 밖에도 저자는 도덕성과 자선으로 이익을 창출한 미국의 신발·의류 유통기업 자포스와 신발 브랜드 탐스 등을 소개하며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증명해보입니다. 또 간략하긴 하지만 각 장마다 기업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가치는
 
저자는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한 콘텐츠를 얄팍하게 다루는 대신, 인문학에 주목하는 일류의 기업들을 소개하며 기술을 이기는 인문학의 힘을 강조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 점이 다른 여타의 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인데요. 독자가 책을 읽고 난 뒤 인문학의 바다에 기꺼이 푹 빠져들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책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진짜 인문학 공부는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게 아니라 어떤 정보를 접할 때 호기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체적 관점에서 비판하고 의심하며 궁극적으로 덕을 쌓아나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인문학의 실용성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인문학적 깊이가 생겼을 때 비롯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는데요. <왜 일류의 기업들은 인문학에 주목하는가>는 단기간 내에 지식을 쌓는 데 열중하기보다는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자신만의 진짜 능력을 쌓는 법, 자신의 관점과 통찰력을 키우는 법에 관심 있는 분들께 좋은 벗이자 길잡이가 될 만한 책입니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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