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위 현장에서 무분별한 채증(증거 수집)을 최소화해 인권을 존중하겠다던 경찰이 카메라·캠코더 구입 등 내년도 채증 예산을 대폭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2016년도 예산안 주요사업 설명자료'를 보면 경찰청은 올해 6억7900만원이던 집회·시위 채증 예산을 내년 35억4700만원으로 5.2배 늘렸다. 정보국이 채증 장비 예산을 4억3700만원에서 22억5800만원으로 올렸고, 채증 시스템 고도화 예산 10억4700만원도 신규 편성했다.
경찰청은 장비가 낡았다는 이유를 댄다. 현재 전국 지방청과 일선 경찰서가 보유한 채증 장비 가운데 카메라와 캠코더는 1424대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해 경찰청의 총 채증 건수는 4169건이었다. 장비 1대당 채증 건수가 3건도 되지 않는 셈이다. 박 의원은 "지난해 16개 지방청과 250개 경찰서 가운데 146곳은 채증을 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기존 장비를 활용해도 충분하다"며 "경찰이 공권력을 남용해 집회·시위 참가자 검거에만 몰두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했다.
'묻지마 채증'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은 지난 1월 '채증활동규칙'을 개정하면서 "무분별한 채증은 최소화하고, 채증 대상은 신속 정확하게 촬영·녹음·녹화해 집회·시위 문화 선진화를 이루겠다"며 "합리적 기준을 세워 집회 참가자 인권을 존중한다"고 했다. 경찰이 내세운 합리적 기준은 현직 경찰관뿐 아니라 의무경찰도 채증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만든 것과 스마트폰 등 개인 소유 기기도 사용할 수 있게끔 바꾼 것이다.
'집회·시위 선진화'는 '과잉 채증'로 이어졌다. 올해 상반기 채증 건수는 5433건으로 예년과 비교하면 이미 1년치를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배 늘어난 수치다. 반면 경찰이 채증자료를 판독해 입건한 건수는 상반기 340건으로 지난해 1148건에서 줄어드는 추세다. 경찰이 집계한 불법 시위도 2013년 45건, 지난해 35건에서 올해 상반기 12건으로 감소하고 있다. 집회·시위가 줄고, 입건되는 수가 적은데도 채증 건수는 거꾸로 많아지는 것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집회·시위 현장에서 채증은 카메라 들이대기로 참가자들을 위축시키는 심리적 차원에서 벌어진다"며 "박근혜 정부 임기 말로 접어드는 내년 총선 등 정치 일정을 앞두고 정권 안위만을 생각하는 경찰이 혈세를 동원해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를 옥죄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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