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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공무원과 예술인에게 필요한 것
2015-10-13 06:00:00 2015-10-13 13:25:03
지난 10월 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 이한신과 장용석이 출석하여 대단히 충격적인 증언을 하였다. 그들은 지난 9월 9일 jtbc뉴스를 통하여 처음 뉴스가 나간 이후 연극계를 넘어서 한국사회를 충격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검열 사태에서 '윗선'의 지시를 받아서 박근형 연출가를 찾아가 창작산실 지원 포기를 종용하였던 당사자들로 알려져 있다.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이한신과 장용석의 증언은 범죄 사실의 자백이었다. 이제까지 알려져왔던 것과 다르게 박 연출가와 G 극단이 포기신청을 한 것이 아니라 문예위 직원들이 시스템에 접속하여 직접 포기 신청을 접수하고 이를 처리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공용서류 등의 무효, 공용물의 파괴(형법 141조, 7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공전자기록위작·변작죄(형법227조의 2, 10년 이하 징역)에 해당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고 이한신과 장용석 또한 '윗선'의 지시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하였다. 이를 믿을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죄목이 추가로 드러난 데 대하여 사람들은 시큰둥한 것 같다. 박 연출가가 써줬다는 '각서'가 시스템에 접속하여 대신 포기 신청하는 일을 허락한 것이라는 얘기마저 들린다.
 
박 연출가는 9월 9일 jtbc 첫 인터뷰에서 이한신과 장용석에 대하여 그들이 불쌍한 문화예술공무원에 불과하다고 하였는데, 그들이 너무나 불쌍하여 '각서'까지 써준 것일까. 그깟 종이 한 장에 이름 석 자를 적는 일이 인간의 양심을 침해하는 일이라며 수년 간의 감옥생활, 심지어 목숨과도 맞바꾸고자 하였던 사람들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각서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10월 5일 예술인 연대 포럼 참석자 중 한 분은 자유발언을 통하여 과거에는 검열이 (텍스트를)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돈으로 통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가령 1955년 정부조직법 개정 이후 총리실 산하 공보처에서 문교부 문화국 예술과로 검열 사무를 이관한 당시 정부는 국산영화면세법, 외국도서번역사업 등 문화 진흥 정책을 펼쳐가며 이미 '돈'으로 문화예술을 통제하는 정책을 활발히 실시하였다.
 
검열은 그때그때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통제 대상, 통제 수단, 통제 방식, 통제 양상이 달라질 뿐 그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 검열이 처음 실시되었던 일제시대 때만 해도 가령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가 출범한 1926년 이후 '불온기사의 사례'를 체계적으로 분류한 것은 물론 1936년에 이르면 명실공히 '검열표준'이란 것을 완성하게 된다. 전시동원체제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작가를 동원하여 선전의 도구로까지 썼다.
 
피해 당사자인 G극단의 대표라는 사람은 방송 인터뷰를 통하여 그러면(공전자기록위작·변작하면) 안 되는 거라면서도 "예술인이 무슨 힘이 있느냐"고 하였다. 헌법은 검열을 금지(21조 2항)하고 예술의 자유(22조 1항)를 보장하고 있지만 예술인이 예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행정권력의 검열에 맞설 힘과 의지가 없다면 무용한 규정이 아닐 수 없다. 자유를 다른 사람이 가져다 줄 수는 없다.
 
일제의 식민지 검열에서 시작하여 해방 후 군사독재에서 계속되었던 검열의 역사를 생각하면 검열과 맞서 싸워야 할 일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박 연출가에게 각서를 요구한 문예위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 연출가의 말대로 그들은 그저 불쌍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법적 의무가 있으며 그들이 불쌍한 공무원에서 아서 밀러의 작품 속 인물들처럼 자기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용기를 낼 수도 있는 인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본말이 전도된 인식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공무원에게 필요한 것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국민 전체를 위하여 봉사할 책임(헌법 7조)이 있다는 자각이고, 예술인에게 필요한 것은 문화 예술이 인류의 것이라는(세계인권선언 27조) 인식이며 부당한 지시를 실행하는 직원들이 불쌍하다는 논리로 검열에 대한 순응을 합리화하지 않는 역사인식이다.
 
이양구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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