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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전담 당국도 없이 사각지대 놓인 기업부채… 부담은 국민 몫
혈세 169조 투입뒤 고작 107조 회수…"시장에만 맡겨선 안된다"
2015-10-14 09:10:00 2015-10-14 09:10:00
우리나라의 모든 빚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증가세가 빠른 채무는 기업부채다. 기업부채는 영리·법인기업은 물론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시가총액 10대 기업집단 등 어느 기업군 가릴 것 없이 문제가 심각하고 부실화의 징후가 뚜렷하다.
 
그러나 경제 계획·운용을 맡은 정부는 애써 기업부채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앞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부채 해결과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부담을 공적자금으로 해결해야 했던 쓰라린 아픔은 망각됐다. 국민이 낸 혈세 168조원이 이런 식으로 기업부채 해결에 쓰였다.
 
취재팀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에 확인한 결과 기업부채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를 둔 곳은 단 1곳도 없었다. 대신 정부는 지난해 11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마련해 부채율이 200%를 넘거나 부채율이 동종업계 평균의 1.5배를 넘는 회사, 횡령·배임이 발생한 기업 등에 금융당국이 외부감사인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1년 만에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올해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2014년 12월 기준 재무기준이 부실해 감사인 지정 조건에 해당하는 기업 114곳 가운데 21곳은 기존 감사인을 그대로 다시 배정받을 것으로 나타났다. 재무부문에 적신호가 켜져 외부감사의 요건이 생겼음에도, 기존 감사인을 그대로 둘 경우 회계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재무 건전성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기업부채를 집계하고 통계를 만드는 한국은행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기업부채 문제가 당국이 나서 관리하거나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은행 측은 "기업실적과 부채가 얼마나 되는지 집계해 동향을 분석하는 게 주요 업무"라며 "정부가 기업 경영에 직접 관여해 부채의 원인을 지적하거나 대책 마련을 요구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기업부채가 과다해졌거나 부실기업이 생겼을 때 국가경제 위기를 거론하며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곳이 언제나 정부였고, 그 부담을 온전이 국민이 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애초 문제가 생길 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처방만 내린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우리경제가 이미 위기에 다다랐고 부채 공화국이 됐는데도 기재부는 재벌에게 잘 보이려고 재벌 편향적인 정책만 취한다"며 "경제위기 관리시스템을 강화해야 할 상황임에도 정부의 대처는 안일하기 짝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부실기업 구제에 정부가 들인 돈은 얼마나 될까.
 
취재팀이 정부가 기업부채 해결과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들인 수고를 따지기 위해 한국은행과 금감원 자료를 비교 분석한 결과,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투입한 공적자금은 지난해 누적 기준 168조65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업에서 회수한 돈은 107조2540억원(63.6%)에 그쳤다.
 
자료/금융위원회
 
정부가 부실기업을 선제적으로 구조조정하기 위해 운용하는 주채무계열제도도 우리은행과 산업은행 등 정부 소유 금융기관이 총대를 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에 따르면, 41개 주채무계열 기업에 대한 주채권은행은 우리은행 16곳, 산업은행 14곳으로 두 곳이 전체의 73.2%를 차지했다. 신한·하나·외환·국민은행 등은 11곳을 맡았다. 또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대상으로 선정된 14개 계열 중 3곳은 우리은행이, 11곳은 산업은행이 담당한다.
 
김상조 교수는 "민간 은행들이 주채권은행으로서의 부담을 회피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재무개선약정을 체결한 부실계열의 구조조정을 국유은행 주도로 진행하고자 하는 금융감독 당국의 의도가 더 짙다"며 "구조조정 추진 부담을 전적으로 국유은행이 졌다"고 힐난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두된 기업부채 문제가 다시 현실화될 조짐이 있는 가운데, 세금으로 조성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긴급 구조조정에 나서는 일을 재연하지 않으려면 미리 기업부채를 모니터링하고 관련 대책을 세우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인성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정부는 기업부채를 시장영역이라 여겨 개입을 꺼리고 개별 기업도 개별 재무상태만 따지므로 총량적인 기업부채에는 관심이 드물다"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기업이 흑자도산하거나 대외적 충격에 쓰러진 일을 계기로 기업부채를 무작정 시장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경험으로 체득했다. 때문에 기업부채 관련 지표를 들여다 볼 필요는 분명 있다"고 말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동부와 현대, 한진 등 부채율이 높은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은 지난해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대상으로 선정돼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지만 부실기업 간 통폐합과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 구상이 백지화되면서 한계기업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최근 중국경제의 불확실성 확대와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 등으로 우리나라의 소비 위축, 수출 감소 등 경제 상황이 안 좋은 상태에서 기업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언제든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정부의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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