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풍기는 본래 바람이 많고 돌이 많고 여자가 많다고 전해진다. 그 삼다(三多)의 들판을 정감록에서는 살기 좋은 십승지 중 제1승지로 꼽았다. 풍기는 사람을 살리는 풍요로운 터다. 그 삼다의 터에 소백산의 지세가 높고 남원천, 금계천의 물길이 모여 명당 풍기 땅의 기운을 북돋는다. 이제 풍기는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로 이름 높다. 번성했던 옛 풍기의 골목들을 돌아보고, 풍기의 들판에 사람 '인' 자로 세워진 풍기읍사무소를 돌아보는 여정이다. 소백산의 가을이 물드는 남원천을 걸으니 백로 한 마리가 마음으로 깃든다.
풍기 여행의 기점은 풍기역이다. 풍기역은 서울 청량리역과 경북 경주역을 잇는 중앙선의 중심역이다. 1941년 개통되어 지금도 여전히 청량리에서 새마을호와 중앙선 기차가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역에서 빠져나오니 역전 광장에서 인삼로를 따라 풍기인삼시장이 늘어서 있고, 남원천변 일대에서는 풍기인삼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옛 시절 역무원들이 머무르던 관사촌 골목을 둘러보고, 남원천변의 인삼축제와 더불어 마치 박물관 같은 풍기읍사무소까지 둘러보는 가을여행 코스다.
(사진=이강)
증기기관차가 숨을 고르던, 중앙선 정중앙역 풍기역
풍기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풍경이 바로 이 굴뚝 모양의 급수탑이다. 먼저 공원에 우뚝 솟은 급수탑을 둘러본다. 바로 옆의 증기기관차와 끊어진 철길까지 50~60년대의 흑백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풍기인삼이 커다랗게 그려진 급수탑의 높이는 무려 30미터에 이른다. 당시 물의 낙차 압력을 이용해 지상의 증기기관차에 급수를 하였다고 전한다. 급수탑의 총 저수량이 50톤으로 전국 최대의 규모였다. 당시의 건축기술로 보아도 그 규모와 크기는 압도적인 것이었다. 50톤의 물은 한 사람이 하루 2리터씩 70세까지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이다.
당시 중앙선 열차들은 풍요로운 기운의 터인 이곳 풍기역에서 기운을 보충하고 죽령고개를 넘나들었다. 풍기역이 청량리에서 경주까지 총 길이 386.6km의 중앙선 철도의 정중앙인 청량리 기점 199km에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중앙선을 달리던 모든 열차가 풍기역에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달릴 물을 보충하였다. 급수탑 옆의 901호 증기기관차가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증기기관차로 2012년부터 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면서 급수탑과 함께 풍기역의 상징이 되었다. 풍기역사 바로 옆에 자리한 선비객차는 청소년 등 젊은 여행객들을 위해 마련된 테마형 숙박시설이다. 코레일이 여행상품인 '레일로'를 이용하는 고객을 위해 새마을호 열차 2량을 개조한 테마형 펜션으로, 풍기역에서 레일로 티켓을 구입한 대상 고객에 한하여 숙박이 가능하다. 사전 예약시 단체 여행자들도 회의실 겸 쉼터로도 이용 가능하다.
(사진=이강)
이제 옛 역무원들이 살았다는 관사촌을 찾아 나선다. 풍기인삼정보화마을센터 건물 바로 앞으로 60~80년대 풍의 나지막한 근대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풍기인삼센터 뒤편이기도 한 이곳은 옛 시절 역무원들이 관사를 짓고 모여 살던 마을이다. 역사광장과 연결된 계단으로 내려서면 인삼로 16번길 골목이 이어진다. 관사촌은 34번지 일대로, 옛 관사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다. 낡고 오래된 가옥들 사이로 골목길의 정취가 그대로고 옛 일제식 적산가옥들도 눈에 띈다. 비교적 한옥보다 규모가 컸던 일제식 관사건물들이 골목길을 따라 이어진다. 천천히 골목을 걸으니 옛 가옥의 지붕 흔적이 남아있는 관사건물, 벽체나 뼈대, 창틀과 문의 양식 등을 그대로 활용한 변형된 가옥들이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옛 관사건물은 기와를 얹은 지붕이 온전하고, 창문과 방문 형태, 다다미방, 굴뚝도 그대로다. 당시 불을 때었던 굴뚝도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다. 수십 년 세월이 배인 풍경들이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소백산의 정기 머금은 남원천을 따라
풍기역에서 인삼로를 따라 400여미터를 내려오면 남원천이 보인다. 남원천의 옛 이름은 남천이다. 여행객들이 숙식하던 남원(南院)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지도서>에 "관아의 남쪽 2리에 있다."고 적고 있다. <조선지형도>에도 남원이란 기록이 남아있다. 소백산 죽령에서 발원한 남원천은 수철리를 지나 풍기를 관통하며 흐르는데, 금계천과 함께 풍기의 들녘을 적시는 물줄기다. 최근 남원천은 하천생태를 복원하고 천변 둔치를 재정비하는 등 명품하천의 변모를 갖추었다. 천변 산책로를 따라 남원천 둘레길이 이어지고, 자전거 전용도로와 영주에서 소백산까지 이어진 소백산자락길을 따라 트레킹족들의 발걸음이 늘어가고 있다. 천변 둔치에 서니 소백산 연봉들이 눈앞으로 펼쳐지고, 물길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잠시 벤치에 앉으니, 고요한 물가에 재두루미며 백학이 날아든다. 산책을 즐기는 주민, 자전거를 탄 여행객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풍경이다.
(사진=이강)
남원천의 맑은 물이 그려내는 사계는 소백의 풍경과 어울려 한 폭의 수묵화와 다름 없다. 봄이면 천변 도로에 늘어선 벚나무에서 꽃잎이 흩날리고, 여름날에는 붉은 장미꽃들이 강가를 물들인다.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남원천 둘레길과 소백산 자락길은 말 그대로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코스다. 예부터 남원천은 주민들의 휴식처로, 풍기를 찾은 여행객이 잠시 머물며 쉬어가는 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매년 남원천 일대에서 크고 작은 잔치가 열린다. 풍기를 대표하는 풍기인삼축제 역시 매년 10월 풍기읍사무소 앞으로 주무대가 설치되는데, 이 때 남원천변에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남원천의 중심인 남원교에서 왼편이 영주, 오른편이 소백산 죽령 방향이다. 영주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풍기읍사무소가, 오른편으로 길을 잡으면 소백산 자락길이 이어진다. 가까이 자리한 풍기읍사무소로 길을 잡는다.
옛 풍기읍성은 사통팔달의 관문으로 사람과 물산이 모여드는 광장이었다. 남원천이 금계천과 합류해 영주로 넘어가는 길목에 풍기의 새로운 명소, 풍기읍사무소가 자리한다. 풍기읍사무소(풍기읍 기주로 110)는 풍기의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여행객들이 쉬어가는 관광명소다. 본래 풍기읍사무소는 풍기초교 옆 옛 풍기성 동헌 자리에 위치했으나, 2012년 이곳으로 신축 이전하였다. 멀리서 보니, 마치 박물관같은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설계당시부터 주목을 받던 풍기읍사무소는 2012 대한민국공공디자인상을 수상하는 등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현재 읍사무소는 풍기읍성의 역사문화를 이해하는 복합적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층은 민원과 행정의 공간으로, 안팎의 개방성과 소통을 강조하고, 2층은 주민 또는 풍기를 찾아온 여행자들의 쉼터로 개방되고 있다.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