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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2015-09-11 12:00:00 2015-09-11 12:00:00
조선시대를 다룬 책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학교에서도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조선의 역사를 가르칩니다. 하지만 막상 조선시대라고 하면 다소 피상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지요. 조선왕조계보를 외우거나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큰 전쟁이 일어난 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제도에 대한 견해를 묻는다면 제대로 답할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이성주 지음, 애플북스 펴냄)>은 그런 분들이 역사를 좀더 가깝게 느끼고, 또 의미를 내포한 지식을 쌓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만한 책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거시사 대신 미시사를 통해 역사의 속살과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을 들여다보는 책인데요.
 
이 책의 저자는 다재다능한 문화콘텐츠 창작자 이성주씨입니다. 이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전시 기획자, 역사 강사,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얼굴로 활동 중인데요. 평소에도 워낙 역사를 좋아해 그 모습을 본 지상학 시나리오 작가협회 회장이 사극 대본을 쓰길 권유하면서 본격적으로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게 됐다고 하네요.
 
◇인물과 이야기에 방점 찍는 책
 
마치 저자는 이 책에도 나오는 조선시대 전기수(이야기꾼)를 떠올리게 합니다.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싸움의 뒷이야기, 조선의 유별난 제도, 우리가 몰랐던 조선' 등 4가지로 챕터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놓는데요. 각 이야기마다 흥미로운 교훈이나 생각할 거리가 던져지며 긴 여운을 남깁니다.
 
가령 정조와 정약용 에피소드는 지도자가 한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데요. 정약용이 성균관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시절부터 결국 노론세력의 모략을 견디다 못해 사직 상소를 올릴 때까지 알뜰하게 보살피는 정조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또 주변의 질투와 질시가 천재를 역사 속으로 묻어버리게 한 과정으로 읽히기도 하지요.
 
 
또 정조와 채제공, 정약용이 각각 순서대로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정치적인 부분을 말끔히 정리하며, 실무를 완벽히 맡아 수행하는 '드림팀'이었다는 대목, 그 결과물이 화성 축조였다는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단순히 이야기만 전하는 게 아니라 오늘날을 살고 있는 독자에게 계속해서 시사점을 던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거시사가 아닌 미시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작가는 “글쓰기의 시작을 소설이나 시나리오로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역사교육은 커다란 사건을 나열식으로 외우는 것이 기본인데, 시나리오나 소설의 경우는 "그 인물이 '왜' 그것을 했는가?”라는 원인과 결과를 묻는 과정에서 캐릭터를 입체화시킵니다. 미시사라는 책의 콘셉트는 바로 그 점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건데요. 시나리오 작가답게 저자는 이 점에 대해 이야기에 빗대어 좀더 상세히 풀어 설명했습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싸움이 있습니다. 일반 가정에서의 처첩 갈등으로 보자면, 남편이 바람이 났고, 이걸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충돌 정도로 끝이 나지만,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배우자인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지죠. 우선 '숙종'의 성격과 성장환경이 나옵니다. 숙종은 14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소년왕입니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수렴첨정을 해야 하는데, 숙종은 이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이때 숙종을 보필한 것이 외삼촌 김석주였는데요. 김석주는 밀정들을 파견해 정적들의 동태를 파악해 정치를 이끈 '밀실정치'의 주창자였고, 숙종은 이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김석주를 통해 권력의 속성, 남인과 서인 세력들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환국'이라는 비정상적인 정치행위를 해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됐고, 나이가 들어 서인의 대표주자인 인현왕후, 남인의 대표주자 장옥정을 두고 입맛대로 정국을 이끌었죠.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해 볼까요?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흥망성쇠의 뒤에는 경제권력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경제체제는 기존의 농업중심에서 ‘상업’으로 개편됐고요. 이앙법의 보급과 확대로 더 이상 노동집약적인 농업이 필요없게 된 것이죠. 이 인력들이 ‘상업경제’에 뛰어든 것입니다. 숙종시절이 되면 어린아이들도 길거리에 나와 장사를 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때 핵심이 됐던 것이 '북어'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라면과 같은 생필품이었던 북어를 놓고 조선의 경제가 움직였죠. 국가에서 공인된 '시전'에서 북어를 팔았던 내어물전과 허가받지 않고 장사를 했던 '난전'이 충돌을 했던 것인데요. 이때 시전 상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장희빈과 남인 세력에 정치자금을 지원했고, 난전 상인들은 인현왕후와 서인 세력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하며 자신들의 상업활동을 보장받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처첩갈등인 줄 알았던 이야기도 미시적으로 접근해 보면,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찾고, 그 이야기를 배경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배웠기에 미시사적으로 접근하는 역사를 찾는 게 습관처럼 몸에 달라붙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는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이 인물 중심으로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마치 영화로 역사를 배울 때처럼 쉽게 읽히는 책인데요. 무엇보다도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흥미롭습니다.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진정한 리더십은 무엇인지, 바쁜 현대인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휴식은 어떤 것인지, 제도가 사람의 생각을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할 것인지 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집니다. 삶의 지혜나 아이디어를 얻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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