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목표가 분명한 축제를 만들고 싶다"
이종호 서울세계무용축제 예술감독 "목표는 신진들의 해외 진출"
"축제는 진화하는 것…감각 세워두지 않으면 낙후돼"
2015-08-31 19:27:53 2015-09-01 16:50:12
기자 생활을 하면서 무용평론가로 데뷔했다. 무용계와 인연을 맺은지 어느덧 30년이다. 18년 전부터는 서울세계무용축제 예술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금은 무용계 마당발로 통하지만 원래 무용 마니아는 아니었다. 오히려 무용을 우습게 보는 도도한 문학소년이었다.
 
이종호(63·사진)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회장 겸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예술감독은 마치 계몽운동을 하듯 무용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80년대 초반에 월간지 '춤'에서 외국의 춤을 번역해 소개했던 이 불문학도는 "지금이야 무용수들이 훌륭해졌지만 80년대 초중반에는 정말 심각했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도 의식이 없어 아쉬웠다"는 게 이 감독의 전언이다. 이 감독은 "무용가들이 들으면 건방지다고 할지 모르지만"이라는 말을 여러차례 반복하면서도 특유의 사명감으로 날카로운 말들을 이어갔다.
 
이 감독을 '계몽운동'으로 이끈 계기는 '매초토'였다. 매달 첫 토요일에 무용계에서 일하는 논댄서(non-dancer), 즉 평론가, 공연기획자, 무용사진 찍는 사람 등이 모여서 소책자를 내기도 하고 젊은 무용가들을 지지하는 움직임도 펼쳤다. 10여년 활동하던 '매초토'는 이제 없어졌고 그 영향의 결과물로 96년 창설한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98년 창립한 서울세계무용축제가 남았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진짜 계몽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축제를 18년째 이끌어오고 있는 이종호 예술감독을 지난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사진제공=국제무용협회)
 
서울세계무용축제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해달라.
 
평론가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80년대 초반인데 '매초토' 만든 게 87년이다. 그 후 10여 년 활동하다 '매초토'는 없어졌고, 서울세계무용축제를 98년부터 시작했다. 아무튼 '매초토' 활동이 축제의 시발점이 됐다고 보면 된다. '매초토'를 하다가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진짜 계몽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용축제를 만들 때 이유는 각자 여러가지다. 개인의 호사가적 취미에서 만들기도 하고, 관에서 먼저 만들기도 하고, 시장이나 군수의 표를 만들기 위해서 만들기도 한다. 내 경우에는 뭔가 행사를 꾸미고 프로그램을 짜는, 중학교 때 문학소년이 시낭송대회를 준비하는 그런 꿈과(웃음) 이렇게 이야기하면 웃길 수도 있지만 무용계에 대한 공익적 사명감이 합쳐져서 시작하게 됐다. 만약 내가 더 능력이 있어서 무용전용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면 축제 하나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럴 돈도 없고(웃음). 축제는 어떻게든 돈을 긁어모아서 하면 되겠다 싶어 축제 쪽으로 시작을 한 거다.
 
올해 축제는 9월30일부터 10월18일까지 예술의전당, 강동아트센터, 서강대학교 메리홀, 남산골한옥마을 국악당 등지에서 펼쳐진다. 올해 주요 특징은 무엇인가.
 
국내 중진, 중견급이 참여하지 않는다. 국제 무대에 진출시킬 신진 예술가 위주로 간다. 당연히 작품이 좋아야 하고, 무대화하는 과정이 쉬워야 한다. 기동성이 좋고, 작품성이 좋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최소한 인정받을만 하겠다, 외국인 프로그래머의 눈길을 끌겠다' 싶은 무용가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품들에 특별한 경향이 있는 건 아니다. 국제무대 진출을 위한 쇼케이스라 보면 될 것 같다.
 
요즘 국제무용계의 흐름은 어떠한가. 감지되는 변화가 있는지.
 
미학적인 문제나 안무의 경향을 떠나서 지역적인 움직임이 눈에 띈다. 무용계의 세력 면에서 볼 때 아시아 쪽에서는 함께 뭉쳐서 유럽에 대등하게 경쟁해보자는 흐름이 있다. 유럽의 경우에는 기존 유럽 무용계 주류의 제작자, 기획자에 대항하고자 하는 그런 정치적인 움직임은 있다.
 
미학적으로는 다른 시기에 비해서 특별한 변화가 감지되는 기간은 아닌 것 같다. 유일하게 한 가지 말씀드리면 요즘은 발레 쪽에 기초를 두면서도 컨템포러리한 느낌을 주는 춤, 그쪽 용어로는 네오 클래식이라고 하는 춤, 우리 말로는 창작발레랄지 현대발레랄지 하는 것들이 다시 뜨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발레를 기초로 해 춤이 발전해온 유럽의 경우 '우리가 그동안 너무 발레를 내팽개쳤나' 하면서 다시 돌아보는 움직임이 있다.
 
서울세계무용축제가 국제적인 플랫폼 역할을 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누군가가 공연을 보러와야 할텐데 누가 보러 오게 되는 것인지.
 
한국의 창작무용들이 국제 무대에 팔려갈 만한 수준이 어느정도 되었다는 게 중요한 전제다. 2000년대 초반에는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있어도 작품을 사지 않았다. 작품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부터 창작수준이 조금씩 높아졌다. 지금은 20명 정도의 안무가 작품을 외국사람들에게 소개하면 적어도 7~8개 작품에 대해 반응이 온다. 아직 세계적인 거물급 안무가가 나오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전망이 좋다.
 
올 10월 열리는 공연예술마켓의 팜스 초이스(PAMS Choice)에 발맞춰 프로모션을 할 예정인데 이 기간에만 프로모션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 오는 손님들을 놓칠 수 없다는 뜻이다. 서울세계무용축제와 팜스가 어차피 겹치니까 연결고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실 평상시 사무실에서 1년 내내 해외에 우리 작품을 소개하려는 노력을 한다. 하다못해 10년 전에 만났던 사람이라도 끊임없이 안무가의 신작이 나오거나 좋은 작품이 있으면 바로 동영상을 보내주고 하는 게 우리 단체의 일이다. 다른 단체와 조금 다른 점이기도 하다. 어쨌든 팜스를 보러 오는 사람 외에 우리가 꼭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의 경우 재정을 부담해서라도 초대도 하려 한다.
 
다른 축제들과는 달리 슬로건이 보이지 않는데.
 
우리 축제의 전통적인 프로그래밍 방식이 섹션식 구성이다. 예전에는 '뷔페, 종합선물세트'라는 표현도 썼는데 너무 잡다하게 많은 것 같이 보여서 요즘에는 섹션 개념으로 간다고 한다(웃음). 어떤 섹션의 경우 해외진출을 위한 공연들을 묶기도 하고, 또 어떤 섹션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명품 공연을 서너개 묶어서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섹션에서는 특정 지역에 집중하는 공연을 묶어내기도 한다. 한 슬로건 안에 집어넣는 것은 지금도 못한다. 앞으로 한동안은 그럴 것 같다.
 
서울세계무용축제가 올해로 벌써 18회다. 곧 20년인데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감회라고 말할 겨를도 없다. 지금 앞뒤 막기에 급급하니까(웃음).
 
처음 시작할 때와 달리 다른 축제들도 많이 생겼다.
 
다른 축제들이 생김으로써 자꾸 차별화를 하라는 요구가 나온다. 남들이 인정하든 안하든 이 분야에서 우리가 1등이라고 생각하는데 근데 1등 자리는 괴롭다. 우리보다 먼저 생긴 국제현대무용제(MODAFE), 나중에 생긴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그리고 우리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이렇게 셋을 두고 지금은 사람들이 '세 축제의 차이점이 뭐냐'고 묻는다. 편하게 얘기하자면 내 입장에서는 사실은 '왜 세 축제가 다 달라야 한다고 요구하나' 라고 묻고 싶다. 제3자가 봤을 때 축제가 각기 다 달라져야 한다고 말씀하시겠지만 축제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 세 개가 연합을 해야 할 의무도 없고, 아무 관계도 아니며, 각자 다 모티프가 다른 거다. 3개 축제의 프로그램이 점점 비슷해진다고들 하는데 서로 다르게 하자고 협의하지 않는 한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 있다.
 
좋은 축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사실 축제라는 것은 엄청나게 진화하는 것이다. 진짜로 살아있지 않으면, 감각을 세워두지 않으면 낙후된다. 물론 한 번 명성을 쌓아두면 어느 정도는 간다. 기업체 실적처럼, 국회의원의 표처럼 결과에 따라 그 자리에서 죽고 사는 게 아니니까 몇 년 더 가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축제를 만들려면 늘 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능력이 없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계획은 딱 한 가지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것(웃음). 그게 아니면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더라. 서울세계무용축제 조직위원회인 우리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조직은 외람된 말씀이지만 돈 빼놓고는 다 갖췄다고 생각한다. 경험이나 조직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그렇다. 하도 무용계는 남을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제는 스스로 칭찬하기로 했다(웃음).
 
남들이 인정하건 안하건 축제를 통해 춤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정말 다른 데서는 할 수가 없다. 목표가 분명한 축제가 별로 없다는 말이다.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한국무용을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서라든지, 국제 합작을 국제 교류를 위해 하겠다든지 하는 게 없다. 나는 적어도 끊임없이 무용발전에 기여하는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용발전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보편화, 대중화도 있고 국제진출도 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니즈에 늘 예민하게 대응하고자 한다. 서울세계무용축제의 역사와 국제 네트워크의 강점을 살려 '인터내셔널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