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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클래식 콤플렉스
2015-09-01 06:00:00 2015-09-01 06:00:00
클래식 잘 몰라서 스트레스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바흐, 모차르트 들어도 좋은지 모르겠는데, 내가 무식한 게 아닐까? 모른다고 하면 창피하고, 안다고 하면 잘난 척 하는 것 같다. 그냥 “베토벤의 <월광>” 하면 좋을 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Op.27-2, 1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라니, 제목만 들어도 머리에 쥐가 난다. 가사도 없는 곡이 길긴 왜 이리 긴가? 웬만한 곡은 거의 30분이고, 말러 교향곡은 1시간 반을 넘나든다. 온통 이탈리아말로 된 용어들, 생소한 악기 이름들, 작곡자와 연주자에 대한 정보까지, 넘어야 할 벽이 하나둘이 아니다. 
 
방송의 날인 9월 3일, <클래식 콤플렉스>란 다큐멘터리가 우수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상을 받는다고 한다. 연출자 전우석PD(MBC경남)는 “나는 클래식을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한 뒤 이 콤플렉스의 실체가 뭔지, 자신이 클래식 애호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러 직접 발벗고 나섰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에게 악기 가격을 묻는 등 황당한(?) 질문부터 “클래식 음악이 왜 좋은가?”처럼 본질적인 질문까지, 창피하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스스로 클래식 콤플렉스 치유에 나선 PD의 용기에 시청자들은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전PD는 취재에 앞서 예습한다는 기분으로 비교적 편안한 상대, 즉 선배 PD인 나를 찾아왔고, 나 또한 친구와 대화하듯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음악이 사람을 위해서 있지 사람이 음악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닐 것이다. 클래식 안다고 우쭐해 할 필요도 없지만 클래식 모른다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12살쯤에 음악 취향이 어느 정도 결정되기 때문에 나이 든 뒤에 취향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따라서, 지금까지 좋아해 온 음악을 계속 즐기되 조금 영역을 확장한다는 생각으로 클래식에 접근하면 부담이 없지 않을까?
 
누구든 귀에 익은 클래식이 몇 곡은 반드시 있다. 영화나 광고, 핸드폰 신호음, 지하철 안내멘트의 배경음악 등 우리는 매일 클래식 음악을 소비하며 산다. 어떤 곡이 좋다고 느꼈고 주제가 기억난다면, 그 곡의 제목과 작곡자 이름 정도는 기억해 두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의 이름, 취미, 식성이 궁금해지지 않는가?
 
클래식 음악은 역사 속에서 탄생하여 진화하고 소멸해 가는 수많은 음악 중 하나일 뿐이다. 인류의 위대한 문
화유산이지만, 지고지선의 유일한 음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클래식 음악이 최초의 오페라 <오르페오>
와 함께 1607년에 시작되어 무조 음악이 대세가 된 20세기에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본다.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클래식의 역사를 조망하면 약 400년 정도 된다. 클래식의 절대적 권위에서 해방되면 클래식 콤플렉스를 치유할 수 있는 시야가 열린다.
 
클래식은 돈과 시간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든 돈 안 들이고 유튜브, 팟캐스트, MP3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클래식이 특권층의 사치라는 시각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귀족과 성직자들이 지배하던 봉건시대의 잔재일 뿐이다. 이 시대, 음악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벗이 되어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강변 음악회, 숲속 음악회, 돗자리 음악회, 달빛공감 음악회 등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음악회가 많이 열린다. 클래식과 함께 조금 넉넉한 마음으로 이 가을을 맞이하면 좋지 않을까.
 
이채훈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400년의 산책>, <ET가 인간을 보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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