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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노동개혁 아닌 재벌개혁이 필요한 이유
2015-08-30 11:30:31 2015-08-30 11:41:40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발표한 노동정책 관련 공약들을 들춰봤다. 짧게 한 문장으로 줄이면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노사관계 정착을 위한 정부의 공정한 조정”이다.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노사 대표와 만나 노동 현안 의견을 듣고 대책을 논의하겠다”는 약속도 있었다. 다 아는 것처럼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재벌 회장들과는 만났으나, 노동자 대표들을 만난 적은 없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취임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규직 과잉보호’와 ‘손쉬운 해고 도입’을 강조했다. 주로 언론이나 기업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서 (인력을) 못 뽑는 상황이다”,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것은 기업이 감당할 수 없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지 않으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은 정규직의 노동조건을 낮추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박 대통령이 2014년 12월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연석회의에서 “노동시장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라고 말하자, 며칠 뒤(29일)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1)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확대하고 2) 파견 허용 업종을 늘리고 3)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하고 4) 임금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35세 이상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의 파견 허용을 추진하고, 향후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 어려움이 예상되는 업종 등에는 추가로 파견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현재 32개로 제한돼 있는 파견 대상 업무를 넓혀달라는 재계 쪽 요구가 반영됐다. 노동자들은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 달랬지, 비정규직 연장해 달랬냐”는 구호로 반박했다.
 
2015년 8월6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노동개혁’을 다시 꺼내들었다.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게 그가 말한 명분이다.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개혁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절반이나 되는 시간을 노동개혁에 할애했다. 청년실업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표명하면서 오직 기성세대 정규직의 양보로만 청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각종 처방을 제시했다. 
 
청년들이 취업하지 못하는 책임을 기성세대 정규직 노동자들이 온통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청년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을 정부와 기업이 아닌 기성세대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향하도록 해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부모와 자식세대 간에 벌어지는 싸움의 프레임으로 바꾸자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였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양대 노총 노동자들이 모두 휴가를 떠난 시간에 ‘비정규직 관련 입법방향 전문가 토론회’를 여는 등 후속 대책들을 발표했다. 현행 2년인 기간제 사용 기간을 35세 이상 노동자에게는 아예 없애 평생 기간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35세 이상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겠다는 종전의 안에서 대담하게 나아갔다. 현행 32개로 제한하고 있는 파견 가능 업종을 55세 이상과 고소득 전문직에게는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을 비롯한 모든 업종에 파견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를 두고 노동단체 등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이란 결국 청년일 때는 알바 노동자로 떠돌다가, 35세가 되면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고, 55세가 넘으면 파견직 노동자로 일하라는 뜻”이라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이러한 대책들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우선 기성세대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춘다고 해서 청년층이 취업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근거가 없다. 오히려 그 둘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연구 결과들만 많을 뿐이다. 부모세대 정규직이 양보해 자식세대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한낱 정치적 수사일 뿐,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는 궤변이다.
 
반면 30대 재벌 사내 유보금 710조원 중 1%인 7조원만 사회에 환원해도 약 23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재벌 대기업 청년 고용 할당제 3%로 약 7만개, 재벌 대기업 근로 시간 단축으로 약 2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전체 기업의 노동시간을 법정 노동시간만큼 단축하면 약 19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연구 결과도 일찍이 있었다(한국노동연구원, ‘장시간 노동과 노동시간 단축(1)’, 2012년). 온갖 명분으로 감면 받는 재벌 대기업 법인세를 원상회복해 3~4조원 정도를 마련하면 그것만으로도 약 10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난다. 실제로는 노동개혁이 아니라 재벌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정규직 임금을 낮추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는 정책은 단기적으로 기업이 인건비를 절약한다는 것 외에 사회에 미치는 유익한 효과가 거의 없다. 기업이 적정한 고용을 유지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경제도 성장한다. 정당한 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한계 기업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오히려 철저한 시장경제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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