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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약속도 오리무중…순간만 모면하면 된다
이건희 회장 사회공헌 약속 진척 없어…삼성, 여전히 "검토중"
2015-09-02 07:00:00 2015-09-02 07:00:00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또 있다. 재벌 총수가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되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를 경우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꺼내든 카드로, 대부분 사재 출연이 약속됐다.
 
이 역시 여론이 잠잠해질 때가지 기다리가가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강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나 국회, 언론과 시민사회의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해당 재벌로서는 시간만 벌면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해당 그룹들은 이행 여부를 물어도 "검토 중"이라고만 답할 뿐, 정확한 입장 발표를 꺼린다. 이러다 보니 길게는 10년 가까이 약속 이행이 불투명한 경우도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09년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는다. 삼성 특검을 통해 4조5000여억원의 차명재산이 드러난 데다, 이중 2조원은 삼성생명 상장을 통한 차명주식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마저도 미진했다는 혹평 속에 특검은 종료됐다.
 
이 회장은 1년도 안 돼 사면 받는다. 2009년 1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 회장 1인을 특별사면하는 초유의 특혜를 베푼다. 사면된 이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회적 공헌을 위해 1조원대 규모의 사재 출연을 약속했다. 차명재산은 실명 전환하고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도 공언했다. 6년이 지난 지금, 그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삼성은 이 회장의 사회공헌 약속 이행 여부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해당 실무를 맡은 삼성경제연구소 사회공헌연구실 관계자는 "잘 알 수 없고, 말하기도 어렵다"며 그룹(미래전략실)에 책임을 넘겼고, 그룹 측은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내놨다. 이 회장의 차명재산 실명 전환 여부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이 회장이 현재 1년 넘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이행 여부는 한층 불투명해졌다.
 
삼성은 지난 2008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도 홍역을 치뤘다. 삼성은 논란 끝에 태안에 지역발전기금 1000억원을 출연키로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오리무중이다. 삼성 측은 "지역발전기금을 받을 단체는 물론 기금을 활용할 방안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현대차는 사재 출연을 하기는 했으나 뒷말이 많다. 정몽구 회장은 2006년 비자금 조성과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한 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보석 직후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사재 84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회장은 2007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6500억원 상당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에 기부했다. 
 
해비치재단은 정 회장의 기부가 마무리된 2011년 12월, 정몽구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대규모의 자금이 마련됐지만, 이렇다 할 사회공헌 실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기부한 것은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영향력을 우회 지배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의혹이 여전하다.
 
◇지난달 14일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기 의정부 구치소에서 출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 광복절 특사를 통해 자유의 몸이 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사면 직후 반도체 사업에서만 오는 2024년까지 46조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계획을 내놔 재계를 놀라게 했다. 이번 투자금액은 올 초 SK가 밝힌 연간 투자계획(14조원)은 물론 2013년 이후 2년간 투자액(20조6000억원)의 2배에 버금가는 규모다.
 
하지만 최 회장도 과거 사재 출연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논란이 됐다. 그는 지난 2003년 계열사 부당 내부거래와 1조9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최 회장은 감형을 위해 사회공헌을 약속했지만,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다 2007년에서야 보유한 워커힐 주식 전량(1200억원 상당)을 SK네트웍스에 무상 출연했다.
 
형제간 경영권 다툼으로 국적 논란까지 발생한 롯데도 민심 달래기용 사재 출연을 공언했다.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수백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사회공헌 사업에 쓸 계획"이라며 "그룹 내 사회공헌팀을 중심으로 장학사업 등 구체적인 용처와 출연 규모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롯데는 올해 투자계획도 사상 최대인 7조5000억원(2014년 5조7000억원)으로 수립하는 등 국가경제에 헌신하는 한국기업 이미지 심기에 나섰다.
 
이처럼 문제를 일으킨 재벌 총수들은 기업 이미지 훼손을 막고 감형과 사면 등의 법적 이득을 누리기 위해 투자와 사재 출연을 약속하지만 실제 이행은 지지부진하다. 특히 재벌 총수의 이해를 위해 그룹 차원의 투자가 좌우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동시에 투자와 사재 출연 등이 공적 목적으로 약속된 것인 만큼, 이에 대한 법적 강제력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투자는 경영 목적을 위해 해야지, 보은이 투자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기업은 경제상황과 사업성을 보고 투자해야 하는데 사면 등과 연계한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업의 투자약속이 제대로 실천됐는지 감시가 필요한데, 정부의 관심도 소홀해 현재로서는 국민들이 재벌의 기만적 행위에 윤리적 잣대로 문제 제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계가 대통령에 공언한 투자 약속도 눈치용, 화답용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은 첫 방미 순방 길에 이건희·정몽구·구본무 회장 등 재계 인사 50여명을 대동하면서 경제민주화와 재벌의 투자 확대를 핵심으로 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삼성은 창조경제의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투자와 일자리를 최대한 더 늘리겠다"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도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을 적극 추진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으며, 구본무 회장도 “투자·고용과 창조경제의 취지에 공감하고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말과 말의 연속이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매년 재계와 투자간담회,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어 재계의 투자계획 확대 및 이행을 독려했으나 재계는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된 투자계획 이행안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글로벌 경기 불황에 따라 국내외 투자여건이 악화돼 섣불리 돈을 풀지 못한다는 변명만 되풀이됐다. 정부 출범 초기 경제민주화 열풍과 반재벌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투자·고용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하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 태도가 돌변했다.
 
자료/뉴스토마토
 
최병호·김동훈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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