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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산은, '대우조선 초대형 부실'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 "부행장 출신들 재무책임자 보내놓고 몰랐다면 '직무태만', 방조했다면 직무유기"
"정책금융 기관 출신들 지원대상 기업 취업 막아야 한다"
2015-08-04 08:19:17 2015-08-04 08:19:17
대우조선해양이 3조원대 초대형 적자를 냈음에도 그간 철저히 숨겨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대규모 적자도 문제지만 지난 2011년 플랜트 수주 당시부터 손실액을 의도적으로 미반영해왔다는 점이 더욱 충격을 줬다. 대우조선해양의 최고 경영책임자가 연임을 노리고 조직적으로 실적 부풀리기를 했다는 의혹도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채무기업의 부실을 전혀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산은은 올해 5월 기준으로 대우조선해양 지분 31.50% 보유한 최대주주다. 동시에 대우조선해양과 41개 계열사에 대해 구조조정 권한을 가진 주채권은행이기도 하다. 2009년 이후 산은 부행장 출신을 대우조선해양 재경실장(부사장)으로 선임했으며, 대우조선해양의 관리 업무를 맡은 산은 기업금융4실장은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다.
 
그런데도 대우조선해양이 4년 넘게 누적 손실을 미반영한 실적을 발표하는데 산은은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또 지난해부터 대형 부실설이 시장에 나돌았지만 올해 신용공여액(대출+선수금환급보증)을 전년보다 1조8000여억원 늘려주는 등 채무기업의 경영상태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산은은 지난주부터 대우조선해양 경영진단에 나서 재무상황을 살핀다고 호들갑이다. 부실사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쪽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는 꼴이다.
 
국책은행인 산은의 직무유기와 대우조선해양 부실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박원석 정의당 의원을 만났다. 참여연대 출신인 박 의원은 2012년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 원내 수석부대표와 원내 대변인 등을 지냈으며 기획재정위원회와 지방자치발전특별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정책 전문가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지난 6월8일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고 있다. 사진/뉴스1
 
-대우조선해양의 대형 부실에 대해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신용공여액을 늘리는 등 채무기업의 경영상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게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조선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악화된 업황이 회복되지 않았고, 조선사들은 건조대금을 헤비테일(Heavy-tail·선박을 인도하는 시점에 대금을 납입) 방식으로 지급한다. 조선업체가 어렵게 선박과 플랜트를 수주해도 재무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자금난에 시달리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시중은행들은 추가 여신을 집행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채무기업의 상태뿐 아니라 산업 전반을 살펴야 하는 정책금융 기관이라도 대우조선해양 등에 신용공여액을 늘려 숨통을 틔워주는 게 맞다. 이런 이유로 올해 6월 말 기준 산은이 대우조선해양 앞으로 집행한 신용공여 잔액도 1년 사이 1조8000억원 늘어났다.
 
다만 정책금융 기관은 채무기업의 경영 상태를 상시적으로 관리하면서도 필요하면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산은은 채무기업의 부실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3조원대의 부실이 발생했다. 산은이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다.
 
-대우조선해양의 재경실장(부사장)은 산은 부행장 출신들이 선임됐다. 기업 운영은 대우조선 출신이 하고 자금 관리는 산은이 한 셈이다. 이런 체계가 부실을 방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유훈·김갑중·김열중 등 전현직 대우조선해양의 재경실장은 모두 산은 부행장 출신이다. 이는 어제오늘 지적된 문제가 아니다. 국회도 수차례 지적했다. 물론 산은 입장에서는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기업에 기업금융 경험이 있는 인사를 임명하는 게 해당 기업을 책임 있게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답변은 임명된 재경실장이 제 역할을 제대로 했을 때 성립한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에서 발생한 3조원대의 부실을 그간 몰랐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산은이 임명한 재경실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재경실장이 부실 가능성을 몰랐다면 직무태만이고,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다. 이들을 낙하산으로 임명한 산은도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이 밝혀지자 기업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도 발뺌했는데, 산은은 지난해 말 대우조선해양을 관리대상 계열로 지정했다. 관리대상 계열에 대해서 채권은행은 수시로 재무구조평가를 시행하고 필요하면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체결해 관리해야 한다.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변명도 설득력이 없거니와 관여하지 않았어도 산은은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사전에 탐지했어야만 한다.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연임을 위해 부실을 숨긴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반면 분식회계라기보다는 조선업 특유의 회계 방식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떻게 보나.
2012년 이후 3년간 고재호 전 사장 재임 동안 여타 조선업체들의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대우조선해양만 매년 흑자를 내는 등 높은 실적을 내는 것을 두고 당시에도 의심스럽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고 전 사장이 퇴임 직전인 2014년 수령한 급여가 8억8900만원이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어려운 경영여건에도 안정적인 경영관리와 장기발전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을 고려해 보수를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고 전 사장이 연임을 위해서든, 높은 보상을 원해서든 실적에 악영향을 주는 부분을 숨길 유인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정확한 사정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실사와 금융감독원의 조사 등이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금융위기 이후 조선사의 헤비테일식 대금지급과 인도 시기의 지연, 잦은 설계변경 등으로 조선산업의 어려움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1011호 건설계약 36조 '예상손실의 인식'에서는 공사 계약과 관련해 '향후 손실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 예상손실을 인지한 시점에 프로젝트 예상원가를 근거로 전체 손실분을 회계에 반영할 의무가 있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K-IFRS를 도입한 것은 지난 2011년인데,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이 규정에 따라 미래 손실분을 예측하고 충당금을 쌓았다. 따라서 대규모 부실이 뒤늦게 밝혀진 대우조선해양이 이제 와 회계기준이 업계 사정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등의 볼멘소리를 하는 것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산은은 앞서 STX그룹의 분식회계 가능성을 알고도 대출해줬다는 의혹을 받는 등 부실 관리 문제가 연이어 불거지고 있다. 산은도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어 이번 부실을 모른 척 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 기관들은 시중은행이 지원하기 어려운 투자위험이나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위해 정부가 지속적인 현금·현물 출자를 통해 자본금을 확충해주고 있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정책금융 기관들이 제 역할을 다하는 지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여신 지원실적도 정책금융 기관이 자기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정부는 최근과 같은 경기침체상황에서 직접 재정을 투입하기보다 부담이 덜한 정책금융 기관을 동원해 경기를 부양하려고 한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4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면서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26조원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올해 역시 추경을 편성해 정책금융 기관 지원계획도 19조원 상향했다. 이렇게 되면 정책금융 기관들은 늘어난 실적을 채우기 위해 무리한 자금지원을 할 우려가 있고, 그 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함께 증가한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에 정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당연히 함께 살펴봐야 한다.

-산은은 대우조선에 대한 실사를 진행한 뒤 기업 정상화를 시도하고 매각이나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부실 사태 책임 의혹이 있는 당사자가 이번 일을 조사하는 것도 문제지만, 실사가 올 10월쯤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돼 차후 조치는 한참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주채권은행으로서 산은이 회계법인을 통해 산은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이번에 실사를 책임지게 된 회계법인이 실사목적에 따라 공정하게 검토·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이번에 실사에 나선 회계법인이 산은 외부감사인이라는 점에서 산은이 실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더불어 지난 2007년 대우조선해양의 지분매각방식을 컨설팅한 회계법인이었다는 점에서도 대우조선해양 매각의 단초가 될 우려도 제기된다. 더불어 이번 실사를 통해 대우조선해양의 손실 규모와 인지 시점 등을 밝혀내, 산업은행 등의 직무태만·직무유기 등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바로 관련자에게 마땅한 책임을 지도록 하고 차제에 제도적 미비점 등에 대해서도 보완을 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부실에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입법 차원에서 어떤 대안이 있나.
정책금융 기관이 조선업체에 대출하거나 선수금환급보증(RG) 등을 발급하는 것이 공식적인 의미의 공적자금은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이 법정관리 등에 돌입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장 정책금융 기관들이 대우조선해양에 추가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두고 문제 삼기는 어렵다. 다만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공식적인 의미의 공적자금이 19조원 가량 투입된 만큼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게 중요한 문제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공적자금의 투입을 거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정책금융 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필요에 따라서 정책금융 기관 출신 인사가 여신을 지원했거나 지원 중인 기업에는 재취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병호·김동훈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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