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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기’ 지나온 북·중 관계 시험대 오르나
북한, 장거리로켓 발사 움직임 보이며 ‘중국 태도변화’ 압박
해외 주재 북한 외교관들 연쇄 기자회견 연 까닭은
2015-08-02 11:43:02 2015-08-02 11:43:02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장성택 처형,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남한 우선 방문 등으로 껄끄러운 상태를 이어온 북한과 중국의 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년여의 냉각기를 이제 끝내고 관계를 회복하자는 신호를 서로 보내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 카드로 중국에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화해의 손짓은 양국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했다. 시 주석이 지난달 16~19일 지린성 일대를 둘러보며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방문한 일이 신호탄이었다. 시 주석은 연변박물관에서 북한·중국·러시아 3국의 경제협력을 염두에 두고 추진돼온 두만강 유역 경제벨트 프로젝트인 '창지투 개방선도구' 사업을 “중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불과 8일 만인 27일 시 주석은 북한과 접경한 랴오닝성의 성도이자 동북지역 최대의 도시인 선양을 방문했다. 동북지역에 대한 관심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북·중 경제협력을 후원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된 행보로 풀이됐다.
 
그러자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화답했다. 김 제1위원장은 26일 평양에서 열린 제4차 전국노병대회 축하연설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에 “경의를 드린다”는 발언을 두 차례 했다. 지난해 정전협정 61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현영철 당시 인민무력부장이 ‘중국’이란 단어를 언급하지도 않았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다음날 김 제1위원장은 정전협정 62주년을 기념해 평안남도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전사자 묘역에 화환을 보냈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 등 한국전쟁 참전 중공군 전사자들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2013년 이곳을 직접 찾은 김 제1위원장은 지난해에는 화환도 보내지 않았다.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 언론들은 김 제1위원장의 이같은 행보를 집중 보도하는 것으로 중국 측의 호응을 간접 전달했다. 리진쥔 북한 주재 중국 대사는 31일 개성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참배하며 "김정은 동지와 조선의 당과 정부, 군대가 역사를 잊지 않고,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나라 앞에는 각각 중요한 외교 일정이 놓여 있다. 중국의 경우 9월 3일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이다. 북한에는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 경축행사가 중요하다. 두 나라는 서로를 각별히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가 실린 고위급 인사의 상호 방문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계획이 이뤄진다면 양국 관계는 사실상 ‘정상화’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길목에서 북한은 중국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최근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미사일발사장 증축 공사를 끝내는 등 10월 노동당 창건일을 기념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를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안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엔 안보리는 강화된 제재 조치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중국은 과거에 그랬듯 거기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그에 대한 반발로 북한은 4차 핵실험으로 내달릴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중국을 향해 ‘동북아 정세의 악화를 바라지 않는다면 로켓 발사 포기의 대가를 내놓으라’는 은근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최근 해외 주재 외교관들에게 연쇄 기자회견을 하도록 한 것은 중국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해석했다.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와 장일훈 주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지난 28일, 김형준 주러 북한대사와 서세평 스위스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는 29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북한은 핵보유국이고 ▲일방적인 핵 포기는 있을 수 없으며 ▲6자회담이 열리지 않는 이유는 미국 때문이라는 주장을 했다. 특히 이들은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준비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부인하지 않거나(장일훈), “위성기술 향상은 주권국가의 권리”(서세평)라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로켓 발사 준비 사실을 내비쳤다. 정세현 전 장관은 “핵문제에 관한 새로울 것 없는 입장 발표보다 로켓 발사 가능성을 시사하는 데에 무게가 실린 기자회견”이라며 “미국을 향해 말하는 형식을 띠었지만, 실은 중국 들으라고 하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로켓 발사를 주저앉힐 수 있는 있는 중국의 ‘상응조치’로는 우선 중국 공산당 서열 5위 이상의 거물급 인사를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일에 파견하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최근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부 공급’을 넉넉히 지원해 달라는 메시지를 중국에 보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 전 장관은 “중국이 정치적·경제적 대가를 충분히 쳐 준다면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를 취소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의 이런 제안과 압박을 받는 중국의 입장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중국이 북한을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 특히 미국에 보여준다면 외교적 입지가 올라간다”며 “자신들이 제공하는 반대급부에 북한이 호응할 것이라는 확신만 생긴다면 중국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비한다며 추진되는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도 북한이 로켓 발사를 접을 경우 명분이 약화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장일훈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오른쪽)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그는 ‘10월 장거리 로켓 발사설’에 관한 질문을 받고 “(10월 노동당 창건기념일에) 대규모 성대한 기념식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발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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