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피아니스트 김다솔 "협연이요? 긴장되기보다는 기대돼요"
2015-08-01 10:21:43 2015-08-06 11:10:09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대관령국제음악제 무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많은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이 선다. 걸출한 실력을 자랑하는 예술가들이 펼치는 여러가지 실내악 공연들 중에서 관객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경우는 아무래도 화려한 무대 매너를 선보이는 쪽이다. 소리의 기교나 다이내믹한 몸놀림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아니스트 김다솔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마치 공연 전체를 아우르는 지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권위적인 분위기로 장악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협연자들을 부드럽게 감싸올리는 듯한 방식으로 연주한다. 곡이 끝날 때쯤이면 관객은 수많은 솔리스트들 중에서 김다솔 특유의 매력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지하고 또 인정하게 된다.
 
연주자들이 아닌 무용수들과 함께 공연하는 경우에도 이같은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무용수들에게는 특히 시간 개념이 중요하다. 몸의 호흡과 에너지를 운용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발레씨어터 수석무용수 서희와 솔로무용수 알렉산드르 암무디와 함께 아시아 초연작 <비가 올 확률>을 연주한 김다솔은 자신의 피아노 건반보다 오히려 무대를 더 자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서로 간 호흡을 중시하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 엘레지 E플랫 단조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보면서 감동적이었어요. 마지막 부분이 너무 슬프기도 했고요." 31일 강원도 평창에서 만난 김다솔은 자신이 협연한 공연에 대해 마치 감상평을 내놓듯 말하며 우수에 젖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만큼 공연에 집중했다는 증거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참석 차 평창에 머물고 있는 김다솔은 이날 저녁에도 손열음과 한 대의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슈베르트의 환상곡 F단조 D. 940를 연주하며 관객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다음은 저녁 공연 전 김다솔과 나눈 일문일답.
  
피아니스트 김다솔(사진제공=대관령국제음악제)
 
-이번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특히 악기 연주자들 외에 무용수와도 무대에 올라 호흡을 맞추기도 했는데, 소감은.
 
발레랑 같이 한 것은 처음이었다. 공연은 자주 봤었다. 클래식에 안무를 붙여서 하는 걸 처음 본 것은 슈투트가르트 무용단 시절의 강수진 선생님 공연이었다. 쇼팽 발라드 1번에 맞춰 춤추는 것을 봤었는데 너무 좋았다. 나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와서 하게 됐다.
 
너무나도 쟁쟁하신 분들과 하게 됐는데 특히 서희씨가 너무 잘 이끌어주셨다. 따로 만나서 제가 연주를 들려 드리고 할 때 '이 부분에서 시간이 어느 정도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 같은 걸 해주셨다. 리허설을 편하게 했고 너무 좋았다.
 
음악으로 표현 못하는 것들이 있지 않나. 피아노는 악기이고 또 가사도 없다. 그런데 음악을 잘 아시는 분들이 제가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몸짓으로 표현해주시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제가 미처 캐치하지 못한 부분들도 춤을 보면서 '아, 저렇게 표현이 또 되겠다' 하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그 외에 플루티스트 오코너랑 이번에 처음 연주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사람도 너무나 좋으시고 해서 리허설도 굉장히 즐겁게 했다.
 
-평소에도 무용을 보는 편이라고 했는데 언제부터 감상하기 시작했는지.
 
처음 본 것은 굉장히 오래 전부터인데 관심을 가지고 본 것은 최근부터다. 아무래도 제가 베를린 거주하다보니 거기서 공연도 자주 보게 된다. 또 차이코프스키 발레 음악을 한동안 집중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무용을 자주 봤다.
 
-발레와 클래식이 어우러지는 공연의 경우 무용수들과의 호흡이 중요했을텐데 어떤 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갔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선 음악을 들려드리면서 시작했다. 그리고 안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사실 굳이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기도 했다. 춤이라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드러내는 예술이지 않나. 몸짓으로 직접 표현을 해주시는 것이니까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리고 영상 링크도 있었다. 이 작품이 미국에서 초연된 작품인데 그걸 영상으로 보니 이해가 잘됐다.
 
조금 색다른 점도 있었다. 무용은 몸의 힘을 많이 쓴다. 근데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어서 사실 리허설을 좀더 오래 할 수 있는데 멈춰야 했다(웃음). 또 무용수 분들은 올라가기 전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려도 안 된다. 그런 게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그랬다.
  
-이번 축제 중 많은 연주에 참여한다. 강행군이다. 특히 오프닝 무대 등 무게 있는 무대를 책임지자면 부담이 들텐데.
 
이번에 오프닝 무대에서도 연주했었고 그 다음에도 메시앙을 계속했고 또 다른 연주들도 많았다. 마지막 연주도 제가 같이 한다.
 
대관령국제음악제에 맨 처음 왔을 당시에는 연주가 많으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가족들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괜찮다. 정명화 선생님과도 나중에 듀오 연주도 했었고 (손)열음 누나 같은 경우에는 너무나도 친하다. 같은 도시의 옆동네에 살고 같은 선생님의 제자이기도 하다. 오늘도 비올리스트 막심과 같이 리허설을 했는데 너무 편하더라. 긴장이 되기보다는 기대가 된다.
 
-사람들과 잘 융화되는 스타일이라고들 한다. 함께 공연하는 사람들이나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는지, 이게 강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저로서도 자신 있는 부분이다. 유일하게 자신 있는 부분인 것 같다. 혼자 연주할 때는 부정적인 부분을 일부러라도 찾아서 수정하려 하는 편인데 합주를 할 때는 조금 더 편하게 하는 것 같다. 연주를 직접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리허설 할 때도 그런 모습이 나오는 것 같다. 좀더 집중을 하게 되니까 같이 연주하는 연주자 분들이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사실 성격은 그렇지가 않아서… 일상생활에서는 절대 남들을 편하게 하는 성격이 아니다(웃음).
 
-음악축제는 개인 연주자에게 굉장히 소중한 기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몇날 며칠 동안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자들과 모여 교류할 기회인데 이런 기회가 흔하지는 않지 않나.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럽에서는 축제라는 게 9월부터 시즌이 시작돼 6월쯤에 끝나고 그 다음에 여름에는 음악 축제들의 대부분이 열린다. 오케스트라에 속해 있던 예술가 혹은 솔리스트들도 시즌 동안에는 연주만 하고 돌아다녀야 하니까 이런 기회가 조금은 덜하다. 이런 축제에서 2주 정도 머물면서 리허설을 하고 연주하는 게 여름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인데 한국에도 그런 기회가 생겨 너무 좋은 것 같다. 대관령국제음악제는 이제 한국에서만 제일 큰 게 아니라 국제적으로 성장한 것 같다. 거기에 같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는 항상 기분이 좋다. 3년째 오는 건데 배울 게 많다. 또 실내악을 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관객한테도 좋은 기회다.
 
그랬으면 좋겠다(웃음).
 
-부산 출신이고 피아노는 만 11살 때부터 시작했다. 4학년 말 경, 뒤늦게 시작했는데 굉장히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다. 4년 후 부산예고에 입학하고, 한예종의 임종필 교수를 사사했다.
 
저는 그 때 제가 늦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게 도움이 됐다. 주위에 음악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늦었다고 얘기해줬으면 음악을 안 했거나 좀더 신경을 썼을텐데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16살에는 유학을 떠났다. 진로를 결정하기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짧았는데 그런 길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재능을 알아봐주신 분은 누구인가. 
 
너무나 많다. 우선 한국에서 임종필 선생님이 처음으로 저를 도와주셨던 분이다. 정말 그냥 좋아서 피아노를 치던 중에 선생님께서 국제 콩쿠르를 내보내셨다. 경험 삼아 보내시나 보다 했는데 제가 우승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나서 지금 배우고 있는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을 포함해 독일로 건너가서 사사한 선생님들이 도움을 많이 주셨다. 한국 무대에 오르게 된 계기는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이 제공했다. 2008년부터 독일 전국 투어를 하며 유럽무대에 데뷔했는데 그 후 2011년 초에 금호아트홀에서 처음으로 연주하게 됐다. 그러다가 2013년에는 금호아트홀 상주 음악가도 하고 그랬다. 그리고 2010년에는 뉴욕에 연주를 하러 갔다가 정경화 선생님을 처음 뵀다. 그때부터 정경화 선생님도 알게 되고 덕분에 대관령국제음악제에도 오게 됐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된 것에 대해 가족들은 좀 생소해 할 것 같다. 
 
아니다. 그래서 전 더 좋다. 부담을 느끼거나 그러지 않아도 되기 때무이다. 정말 엄청나게 자연스러우신 분들이다. 연주회 보러 나오시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신다. 그냥 조용히 보시고 가신다. 그래서 편하다.
 
-피아노는 처음에 어떤 계기로 연주하게 됐나.
 
클래식 음악 자체를 워낙 좋아했다. 어렸을 때 처음 읽은 위인전기도 모차르트였다. 그것도 일종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엄청나게 많았다.
 
-기교에 집중하기보다는 힘을 잘 운용하는 피아니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는 좋다. 화려한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저는 스스로 악기 다루는 능력보다는 음악을 얼마나 잘 다스리는지에 포커스를 두는 것 같다. 힘을 잘 쓴다고 보신 거면 음악에 힘이 있다고 들어주신 거니까 저한테는 엄청난 칭찬이다.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손열음과도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다. 사실 같은 피아니스트로서 경쟁을 할 수도 있는 관계인데 친하다.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시더라. 그런데 저희는 서로 돕는 그런 관계이고 연주 스타일도 워낙 달라서 경쟁 자체가 안 되는 것 같다. '누가 어떤 점이 더 강하다'는 생각 자체가 안 드는 것 같다. 또 서로가 서로를 너무 좋아한다.
 
-이번 축제 주제가 '프랑스 스타일(French Chic)'이다. 평소에 프랑스 음악에 관심이 있었는지.
 
라벨 같은 경우 한동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라고 얘기하고 다녔었는데. 이번에 라벨 곡을 못해서 아쉽긴 한데 대신 메시앙이라는 큰 곡과 공연을 통째로 넘겨주셔서 좋은 기회가 됐다. 메시앙은 콰르텟으로 처음 연주했는데 그러기가 흔치 않다.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번에 협연하면서 기억에 남거나 감동적이었던 협연자를 꼽는다면.
 
우선 저는 메시앙이 한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작품 자체가 너무 좋아서 4명 모두가 마지막 즈음에는 곡에 휘둘렸던 것 같다. 저희들이 음악을 연주한 건데 결국은 작품이 저희들을 휘두르지 않았나 싶다. (최)재일이 형도 그렇고, 폴 황, 루이스 클라렛도 그렇고. 한동안 정말 기억이 많이 날 것 같다.
 
-대관령국제음악제에 3년째 출연 중이다. 이 축제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우선 많은 음악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특히 젊은 음악인들에게는 그렇다. 연령대와 상관 없이 다 모여있지 않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도 되고, 멘토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정명화, 정경화 선생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되니 너무 좋다. 또 실내악 앙상블을 하는데 거기서 배우는 점이 엄청나게 많다.
 
-앞으로 음악 인생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저는 좀 다양하게 가고 싶다. 앙상블도 계속 하고 싶다. 그렇다고 솔리스트 활동을 그만 하고 싶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분배를 잘 해서 그렇게 연주를 계속 하고 싶은 것 같다. 요즘은 솔리스트들도 실내악 연주를 많이 한다. 그렇게 함께 하는 게 재미 있다.
    
-다양하게 가고 싶다고 했는데 혹시 나중에 피아노 외에 다른 전공을 찾아나서거나 하는 일에도 관심이 있는지. 예를 들어 손열음은 하프시코드에 도전하기도 했고 장한나는 지휘자로 전환하기도 했다. 본인은 피아노만 치고 싶은 쪽인가.
 
그렇게 말을 확정지어 버리면 나중에 곤란해질 수 있다(웃음). 지금 현재로서는 피아노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다. 배울 것도 너무 많다. 바로크 음악도 하고 현대 음악도 하고 싶다. 오케스트라, 리사이틀, 앙상블 등 다양한 형태로 많은 공연을 하고 싶다. 음, 아마 저는 피아니스트로서 굉장히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웃음).
 
-한국과 외국을 아우르며 활동 중인데 연주의 비중은 현재 어떤 정도로 나뉘는지. 한동안 한국 공연을 늘리기도 했었다.
 
한동안 엄청 많이 했었다. 2013년에 특히 많이 했었는데 작년 뉴욕필 연주를 하면서 그때부터는 횟수를 조금 줄였다. 그런데 이번에 음반을 발매하면서 다시 한국에서 활동을 조금 더 활발하게 할 생각이다.
 
평창=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