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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원대 감춰진 손실, 대우조선에선 과연 무슨 일이…
산은 "조선업 특유 회계처리가 사태 본질"…"성과 급급 산은-연임 욕심낸 CEO 합작품" 의혹
2015-08-05 07:00:00 2015-08-05 07:00:00
대우조선해양의 3조원대 초대형 적자를 계기로 계약기간과 수주, 잔금처리 기간이 긴 조선·건설업체에 대한 분식회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업체들은 조선산업 특유의 회계방식 탓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주기적으로 역마진이 날 금액을 평가해 손실로 처리하는 게 관행인데, 공사 진행률에 따라 예상손실액을 계산해야 하므로 적기에 손실을 예측하거나 반영하기 어렵다는 해명이다. 특히 해양플랜트나 해외건설 등은 유가와 환율, 국제정세 등 변수가 워낙 많아 손실 예측·반영이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조선 3사가 발표한 2분기 실적만 봐도 총 5조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기록했는데, 다 이런 사정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해외사업 비중이 높은 건설업계에서도 나온다. GS건설 관계자는 "건설업의 경우 1조원짜리 프로젝트에서 30% 정도의 공정을 진행했다면 매출액을 3000억원으로 계산한다"며 "하지만, 발주처에서 판단한 공정률이 따로 있고 공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공사손실충당금도 늘어나 손실로 잡힌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해명과 달리 실적만 믿고 지원한 정부나 투자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한국산업은행이 급히 경영진단에 나섰고 금융감독원도 조만간 회계감리에 착수할 태세다. 당국은 대우조선해양이 2011년부터 시작된 손실을 의도적으로 숨겼는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산은과 금감원, 대우조선해양 각자의 분석이 엇갈리는 가운데 ▲고재호 전 사장이 연임을 위해 부실을 숨겼는지 ▲산은이 대우조선해양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산은과 대우조선해양이 부실을 숨기자고 공모했는지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가장 설득력을 얻는 주장은 경영진 교체 시기 잠재 부실을 떨어내기 위한 '빅배스(Big bath)'라는 것이다. 선박과 플랜트 등을 제조하는데 투입되는 비용이 커지고 공기도 길어지면서, 공사손실충당금 등을 설정해 손실로 반영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조선업계는 선박 제조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공사손실이 예상될 경우 충당금을 쌓아 비용에 반영한다"며 "선박 건조 기간이 3년이라면 선박 수주금액과 선박 제조비용을 3년으로 나눠 매출과 비용으로 잡고, 제조비용이 선박수주금액을 초과할 경우 공사손실충당금을 설정해 손실로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산은과 금감원 역시 "조선업 특유의 회계처리 방식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짚었다. 다만 문제는 평균 3~4년이 걸리는 선박·플랜트 제조기간을 고려할 때 제조비용을 예측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공사손실충당금을 정확하게 추정하거나 분석하지 않고 사업계획을 추진할 경우 어닝쇼크급 이상의 손실이 생기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건이 그렇다.
 
고재호 전 사장이 연임을 위해 의도적으로 부실을 숨겼다거나 산은이 부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공사손실충당금을 어떻게 설정하고 어느 시기에 어떤 목적으로 추정하느냐에 따라 부실을 숨길 여지가 너무 많다. 마찬가지로 산은 부행장 출신이 대우조선해양 부사장으로 근무하더라도 고도의 기술적 전문성을 요구하는 조선업 회계처리 방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부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산은의 정치금융과 대우조선해양 사장들의 욕심이 합작된 작품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산은이 부실기업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 실적을 부풀려 매각가치를 높이려고 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여기에 남상태·고재호 전 사장 등이 자신들의 연임에 불리할까봐 부실을 감췄다는 설명이다.
 
대우조선해양 출신 전 임원은 "조선업에 대해 전문지식이 없는 국가 기관이 경영에 깊숙이 개입했고 대우조선해양 임원들 역시 자신의 입신양명만 쫓는 과욕이 맞물렸다"고 비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선·건설은 장기적으로 사업이 진행되지만 손실반영 시기와 빅배스 시점은 모두 기업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당국이 관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이후 최근 6년간 대우조선해양 사장. 왼쪽부터 남상태(2009년~2012년), 고재호(2012년~2015년), 정성립(2015년~현재). 사진/뉴시스
 
최병호·김동훈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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