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포기하는 이른바 ‘수포자’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수학은 개념과 원리를이해하고 해법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능력을 기를 수 있는 중요한 과목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문제로 학습 부담을 주고 결국 ‘수포자’로 내몰고 있다. 이렇다 보니 사교육도 함께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과 시민단체‘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은 수학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전국단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지난 22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5월 전국 초중고교생, 수학교사 등 9022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초등 6학년 2229명, 중학교 3학년 2755명, 고교 3학년 2735명 등 학생 총 7719명과 교사 1302명이 참여했다. ‘수포자’ 비율과 발생 학년 등을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한 첫 대규모 실태조사다.
조사결과 초등학생은 36.5%, 중학생은 46.2%, 고등학생은 무려 59.7%가 ‘수포자’로 집계됐다. 학생들은 수학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로 ‘수학 내용이 어렵다’는 점을 꼽았다. 초등학생 27.2%, 중학생 50.5%, 고교생 73.5%로학교 급이 올라갈수록 20% 포인트 이상씩 크게 늘었다. 그 이외 이유로 학생들은 ‘배워야할 양이 너무 많다’ ‘진도가 너무 빠르다’ ‘선생님 설명이 어렵다’ 등의 순으로 답했다.
교사들도 ‘수포자’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했다. ‘학생이 수업을 얼마나 잘 따라온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0% 이하’라고 응답한 비율이 초등학교 19.1%, 중학교 30.2%, 고등학교는 중학교의 두배가 넘는 63.6%에 달했다.
또 수학 사교육을 받을 때 학교 진도에 앞서서 선행교육을 한다고 응답한 학생 비율은 초
70.4%, 중 77.8%, 고 72.1%로, 사교육 의존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부도 문제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9월 2018년부터 적용될 새 교육과정의 수학학습량 20%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또 수학과목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쉽고 재미있는 수학을 교육하겠다고 9월 약속했다.
정부는 이에 따른 실천사항으로 ▲부적합 내용과 주변적 내용 삭제 ▲유사 개념 통폐합 ▲불필요한 과잉 학습 유발 내용 삭제 ▲수준별 난이도 조정 ▲학년 간 학급간 단순 반복 내용 감
축 조정 등을 권고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박경미 홍익대 교수 등 연구진 37명에게 용역을 줘 학습 부담 경감 실현 방안 등을 연구했으며 그 결과인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정책 연구’ 결과가 지난 5월 발표됐다.
그러나 이 시안은 오히려 이전보다 학습 부담을 늘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교육걱정’이 2015년 수학 교육과정 시안과 2009년 수학 교육과정을 비교 검토한 결과, 초등 수학 시안에서는 교육부 권고사항이 전혀 반영이 안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걱정’은 연구에서 초등 고학년 때부터 ‘수포자’가 발생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학 수학에서도 되레 어려워지고 학습 내용도 늘렸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차함수 최댓값과 최솟값의 경우, 2009 교육과정에서 중3, 고1에 분산해 가르치던 것을 중 3학생들에게집중 몰아서 배치했다. 이는 교육부가 “어려운 내용은 상급 학년으로 올리겠다”는 약속과 모순된다. 여기에 ‘상관관계’라는 새로운 단원까지 추가됐다. 반면 중학생 ‘수포자’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영역인 ‘기하 도형의 형식 논증’ 부분은 그대로 두었다.
고등 수학도 마찬가지다. 수학Ⅰ에서는 문과의 경우, 2009 교육과정에서 삭제됐던 지수함수와 로그함수, 삼각함수가 추가됐고, 이과는 삼각함수의 활용이 추가됐다. 수학Ⅱ에는 종래 미적분Ⅰ에 해당되는 내용이 그대로 들어와 있는 것으로 포함돼 있다. 이는 문과생에게 불필요한 미적분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외면한 것이라고 ‘사교육걱정’은 꼬집었다.
특히 미적분 Ⅱ는 대학이공계 교육과정에서도 중복되는 부분을 과도하게 가르치고 있어 과잉 교육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미적분을 현재처럼 문과는 미적분Ⅰ, 이과는 미적분Ⅰ,Ⅱ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문과는 미적분을 빼고, 이과는 미적분 Ⅱ를 대학과정 혹은 고교 진로 선택과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과 선행교육의 주범인 기하와 벡터는 여전히 남아있고 오히려 삼각함수 활용 부분은 추가됐다. 축소와증가 영역을 함께 고려하면 고교 이과생들은내용이 다소 줄었으나 학습량 20% 경감을 위한 내용 축소와는 거리가 먼 상태다.
이에 ‘사교육걱정’은 수학 학습량 경감을 위해 축소해야 할 수학 단원들을 제시했다.
우선 초등 수학에서는 6학년이 배우는 ‘분수와 소수의 나눗셈’, 비례 영역, 원주·원주율등은 초등학생들 발달 단계상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상급학년으로 올려야한다고 ‘사교육걱정’은 제안했다.
중학 수학에서는 ‘기하와 도형의 형식적 증명’ 부분을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사교육걱정은 촉구했다. 이 단원은 중학교 때‘수포자’가 생기는 가장 핵심적인 단원으로, 인지 발달단계상 고등학교에 적합하다는 이유다. 또 시안에서 새로 추가된 상관관계와2009년 교육과정에서 고1에 해당됐던 대푯값,산포도는 고1 과정에서 배우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 단체는 설명했다.
고등 수학에서는 공통수학 중 ‘순열과 조합’에 해당되는 부분은 2학년으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9년의 경우 2학년 ‘순열과 조합’에 해당되는 내용이 2015년의 경우엔 고1로내려왔다. 또 중학교에서 상관관계를 도입하려면 고 1과정에서 중학교 3학년 과정으로 내려간 대푯값과 산포도를 고 1로 원상회복 시키고 순열과 조합은 확률과 통계 과목에 그대로둬야 학습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수학Ⅱ(미적분)는 2015 수학 과목 ‘미적분’으로 이동해야한다고 ‘사교육걱정’은 강조했다.
이와 함께 2015 수학 과목 ‘미적분’은 진로선택 과정이나 대학 과정으로 들어가고, 이 자리에는 2015 수학Ⅱ 과목(미적분Ⅰ)이 이동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고등학교 이과 교육 과정은 대학에서도 다시 가르치기 때문에,고등학교 때 미리 선행해서 반복해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벡터 부분 역시 같은 이유에서 교과 과정에서 빼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교육걱정’은 이같은 지적과 함께 “2015개정수학 교육과정과 수업 방법, 평가를 혁신하고 2018년 수능 체제 전반에 대해 전면적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육부와 2015 개정 수학교육과정 연구진에게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의미 있게 배울수 있도록 오는 9월 교육과정 개편 때 수학 교육과정 분량을 20% 감축하라”고 촉구했다.
윤다혜 기자 snazzy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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