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악을 재료로 삼아 곡을 쓰고 공연을 올리는 많은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보통은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하고 퓨전음악공연으로 분류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비빙(Be-Being)의 음악은 좀 다릅니다.
비빙은 한국 전통악기 연주자, 소리꾼, 사운드엔지니어, 무대감독이 함께 하는 단체입니다. 이곳에서는 전통음악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실험적인 음악을 지속적으로 생산 중인데요. 비빙의 음악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 단체는 전통을 모티프로 삼고 있지만 소위 요즘 말하는 퓨전음악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소리들을 창조해냅니다.
비빙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장영규 음악감독입니다. 어어부프로젝트 멤버이기도 한 장영규 감독은 대중에게는 영화음악감독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달콤한 인생>, <타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황해>, <도둑들>, <도희야>, <만신> 등 수많은 영화에서 특유의 기묘한 음악으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장영규 감독은 오래 전부터 무용과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당하는 한편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과도 깊은 친분을 맺으며 '딴짓'도 많이 했었는데요. 그 딴짓의 결과물이 2008년 결성한 비빙과 비빙의 음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비빙의 이름으로 공연도 이미 수차례 올렸습니다. 불교음악 프로젝트 <이와사>를 필두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은 현존하는 12가지 가면극을 바탕으로 만든 가면극음악 프로젝트 <이면공작>, 궁중음악의 형식을 차용해만든 궁중음악 프로젝트 <첩첩>, 새로운 판소리 창작을 시도한 판소리 프로젝트< 피-避-P project> 등입니다.
비빙의 음악이 독특한 이유는 여러가지 전통음악 중 음악의 구조나 질감 같은 소리의 원형만 추출해낸 후 자신들만의 음악으로 빚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전통음악의 가락이나 음율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이 아닌, 한국적 소리의 원형이라는 작은 공통분모만을 마치 지문처럼 음악에 남겨두는 셈입니다.
비빙 신작 <이종공간> (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올 7월 들어 선보이고 있는 신작 공연 <이종공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목이 우선 눈에 띕니다. 예전 공연들과는 달리 특정 음악의 명칭 대신 다원이라는 수식어만 붙였는데요. 공연은 물리적 시공간의 겹침 혹은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커다란 배를 타고 제물로 팔려가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았는데요. 구체적인 줄거리를 기대하기보다는 다채로운 음악의 파장에 그저 귀를 맡긴 채 감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번 공연에는 나원일(피리), 박순이(가야금), 신원영(타악), 이승희(소리), 천지윤(해금) 등 비빙 멤버들에다 소리꾼 이희문과 안이호가 특별출연으로 함께 하는데요. 이들은 전통악기뿐만 아니라 심벌즈에다 종, 급기야 바스락거리는 비닐까지 활용해 그야말로 이종의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이희문의 소리가 인상적인데요. 성별의 구분을 파괴하는 신기 어린 그의 목소리는 이 공연의 결을 풍성하게 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합니다.
무대 연출 전문가가 아닌 음악감독이 연출을 맡았기 때문인지 무대는 사실 어수선한 편입니다. 미학적인 완성도를 추구하는 대신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공연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기능에 집중하는 듯한 인상인데요. 울창한 원시림 같은 나무들을 지나 겹겹이 드리워진 반투명한 화학소재의 발들을 헤치고 지나가는 출연진의 모습은 비빙의 공연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전통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창조한다'는 비빙의 콘셉트를 쉽게 이해하도록 합니다.
공연명: <이종공간>
날짜.장소 : 7월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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