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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휴먼스토리 기저에 어른거리는 '보수 애국주의'
보수진영 주장 일관되게 반영…사실관계 왜곡도 심각
통일·외교 담당기자가 본 영화 '연평해전'
2015-07-05 12:51:22 2015-07-05 16:21:20
김학순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적인 의도가 없는 영화’라며 ‘가족과 인간에 관한 얘기로 봐달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매우 정치적이다. 우선 영화가 현실에서 소비되는 맥락이 정치적이다. 유명한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가 겪은 일이 상징적이다. 그는 지난달 28일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영화의 완성도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별점 2개를 줬다. “영화를 통해 (연평해전을) 기억하려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고, 그 영화를 잘 만들기까지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 글에는 그의 다른 영화 평에 비해 훨씬 많은 댓글이 달렸다. 공감한다는 반응도 물론 있었지만, ‘매국노’라는 식으로 영화평론가를 정치적으로 낙인찍는 글이 많았다.
 
논란이 일자 야당에서 논평까지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부대변인은 30일 ‘영화평론까지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이동진 씨가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평면적’이고 ‘애국심과 국가적 가치를 강조하는 방식도 투박’하다고 평한 것은 미학적 관점에서의 ‘영화비평’이지 정치적 관점의 ‘애국심 결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24일 트위터에 남긴 글은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더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대통령 한번 잘못 뽑으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다음 대통령은 아예 NLL을 적에게 헌납하려 했었죠.”
 
그렇다면 영화의 내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무색무취한 영화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사람들만 탓할 일인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영화에서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장면은 2~3개이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연평해전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영화는 바로 그 부분에서 그간 보수언론들이 내놓은 논리와 주장을 일관되게 반영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햇볕정책 때문에 꽃다운 청춘들을 잃었다고 주장하기 위한 근거들이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장병들의 실명을 쓰고, 영화가 끝나는 부분에 참전 장병들의 인터뷰를 넣고, 당시 찍은 실제 영상들을 섞어 편집함으로써 마치 모든 내용이 역사적 진실인 양 보이도록 했다. 영화가 이러한데, 현실 정치에서 활용한 사람들만 문제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한의 이상 징후를 포착한 통신감청이 있었지만 군 수뇌부가 묵살한 것으로 그려진 부분이 대표적이다. 이 논란은 한철용 당시 제5679 정보부대장(현 예비역 소장)의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소장은 연평해전 전인 6월 13일과 27일 북한의 도발을 예고하는 감청 정보를 보고했지만 군 수뇌부가 뭉개버려 희생이 커졌다고 주장한다. 영화에서 통신부대장으로 묘사된 인물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다양한 반론이 나와 있다. 첫째, 한 소장은 북한 경비정이 교전 이틀 전 상급부대인 8전대에 ‘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고 보고한 것을 감청했다고 주장하나, 실제 그러한 보고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임동원 당시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의 회고록 <피스메이커>에 따르면 한미연합사령관은 연평해전 발발 며칠 후 “8전대 이상의 상급부대에서 도발을 지시했다는 징후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정보 판단을 정부에 공식 통보했다. 북한 경비정이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일으킨 도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적인 도발을 준비하는 상부와의 교신’을 잡아냈다는 한 소장의 주장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둘째, 장병들의 희생이 컸던 것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단계에서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경계와 작전이 실패했기 때문이었다는 반론이다. 정보의 수집과 보고가 중요하긴 하지만 연평해전 희생의 이유를 따지는 데에 그 의미가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여러 반론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들은 그동안 한 소장의 주장을 발판삼아 ‘김대중 정권이 장병들을 희생시켰다’는 논리적 비약을 구사해 왔다.
 
아울러 5단계로 이뤄졌던 교전규칙 때문에 당했다는 식의 묘사도 보수진영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교전규칙은 한국군이 아니라 유엔사령부에서 정전 상황을 유지·관리하기 위해 만든 군사적 행동규칙이며, 제1연평해전 때는 이 교전규칙에 따라 대승을 거뒀다는 사실이 검토됐어야 한다.
 
팩트가 틀린 부분도 있다. 영화 초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설명하는 자막이다. “유엔군 사령관은 휴전과 함께 해상 NLL을 설정하면서 NLL 이북에 있는 모든 도서를 중국과 북한에 양도했다. 북한은 유엔군 점령하에 있던 서해상의 섬들을 다시 차지하면서 NLL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북한이 자기네 쪽 섬들을 다시 차지하는 것과 NLL 설정을 맞바꿨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북한이 섬들을 다시 차지하게 된 것은 휴전 협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27일 ‘전쟁 전 북측이 통제하고 있던 섬들 중 서해 5도를 제외한 나머지 섬들에 대한 유엔의 관할권을 포기한다’는 합의가 우선 나왔기 때문이다. NLL 설정과는 무관한 합의였다. NLL은 “휴전과 함께” 설정된 것이 아니다. NLL은 정전협정 체결(53년 7월 27일)로부터 34일 후인 8월 30일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유엔의 함정과 항공기 초계 활동의 북쪽 한계를 설정하기 위해 그은 선이다.
 
감독을 비롯한 영화 제작자들은 북한의 NLL 침범은 잘못된 것이고 해군의 NLL 수호는 정당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NLL 설명자막을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잘못된 내용이 담김으로써 역사적 사실 보다는 정치적 의도를 중요시하는 영화라는 인상을 남기게 됐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영화 '연평해전'에서 참수리 357호 승조원들이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는 장면. 연평해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를 상상해 묘사했다. 사진/영화사 ‘하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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